감기가 호되게 걸려 한동안 의도하지 않은 묵언 정진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찬바람만 맞아도 목구멍이 쓰리고, 피가 나는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통증이 심하더니 이어서 아예 소리가 안나오길래 ‘입다물고 살라.’는 말인가 싶어 최소한의 말만하며 며칠을 지냈습니다.
컨디션이 떨어지니 모든 일상사가 다 한박자씩 느려져서 책상위에 책이 어지러이 수북하여도, 설거지가 산같이 쌓여도, 현관에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아도, 목욕탕에 수건이 삐뚤하게 걸려 있어도.. 전같으면 도대체 꼴을 보지 못하는 일들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마당이니 그냥 보아 넘길수 밖에요.
일찌감치 잠자리에 누우며 저녁 염불을 쉬고, 습관적으로 새벽4시 반이면 눈이 떠지지만 좌선도 쉬었지요. ‘이 상태로 추운 법당에 앉으면 감기가 안나가지, 이번주는 쉬자.’하며 마음을 풀고 새벽 좌선을 쉬었습니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목소리도 돌아 오고, 감기는 거의 나았는데 한 동안 좌선을 쉬며 아랫목을 즐긴 업(業)은 쉬이 제자리로 돌아와 지지 않습니다. 눈을 뜨면 핑계도 함께 떠오릅니다.
‘아직 잔 기침이 좀 남았는데…몸이 피곤해서 요새 자꾸 아프니 좀 쉬는게 나을 것인데…아랫층 법당이 추워서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이 핑계 저 핑계가 떠올라 좌선을 한 주 더 쉬며 ‘컨디션을 완전히 회복하고, 다음 주 일요일 부터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막상 다음주가 되어 일요일 새벽에 알람이 울리는데 마음이 완전 딴 마음입니다. 몸이 한번 편안함을 익히니 오래된 습관을 밀어내는 일정도는 간단합니다. ‘이럴거면 법당에 자리를 펴고 자든지 해야지, 그래서 눈뜨면 법당이니까 아예 발도 빼지 못하게 하든지 해야지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겨우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처음 출가를 하고 원불교 중앙 총부에 살던 시절 별로 좋아 하지 않던 소리가 새벽 4시 반에 울리는 종소리였습니다.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이런 노래는 종소리를 일년에 한번 들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 만든 노래일 것이고, 매일 기상 나팔소리 처럼 종소리를 듣는 사람에게는 은은하고 낭만적인 소리일리가 없지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4시 반이면 어김없이 총부에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소리에 맞추어 총부 모든 식구들이 기상을 하고 선방으로 모여 듭니다. 출가 전부터 아침 잠이 많던 사람이라, 특히 겨울이면 아랫목을 떨치고 일어서는게 입맛이 쓰디 썼습니다. 그래서 그때 ‘태어나는 일이 죽는 일보다 어렵다.’고 하시던 스승님의 말씀을 알아 들을 것 같았지요.
낳고 죽는 일을 잠자고 깨는 일에 비유를 한다면, 잠자리에 누워서 잠이 드는 일은 편안하고 행복한데 아침에 몸을 깨우려면 정말 일어나기 싫어서 몇번을 뒤척여야 간신히 일어나니, 그걸 생각하면 태어 나는 일이 훨씬 어려운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어찌 어찌 간신히 일어나긴 하였으나 처음 선을 하던 시절은 고문도 그런 고문이 없었습니다. 꼼짝하지 않고 한 시간을 앉아 있으려니 허리는 뻣뻣해지지, 다리는 저리고 쥐나고 아프지, 그렇다고 코에 침을 바를 수도 없고 눈하나 깜빡 움직일 수도 없으니 ‘이러다가 다리가 부러지든지 허리가 꺽어지든지 아님 내가 선방에서 실려 나가고 말지’싶었습니다.
선이 끝나고도 한동안 다리가 펴지지 않아 일어 설 수가 없던 시절을 한 일년 보내고 나니, 비로소 앉을 만 해졌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젠 졸음이 밀려와서 졸음과 사투를 벌이고, 나중에는 마음에 일어나는 잡념이 많아 잡념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기를 반복을 하면서 선방 문턱을 몇년 들락 거렸습니다. 그렇게 출가 초년기는 지난 인생의 게으른 습관과 단련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부지런하게 늘 한결같은 수행자의 습관으로 바꾸어 나가는 나름 투쟁의 시기였습니다.
오늘 아침 법당에 나가며 생각하니 그렇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심신을 길들였어도 그것을 무너뜨리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나 노력이 필요한게 아니구나. 몸과 마음에 좋은 습관을 하나 길들이기는 정말 어렵지만 나쁜 습관 하나 익히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습관을 익히는 일은 나쁜 습관을 과감히 털어내면서 만들어지는 일이라 자기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일인 반면, 나쁜 습관은 돌아보지 않으면 저절로 만들어 집니다.
마치 꽃을 피우려면 많은 공력이 들어도 그 꽃을 볼까 말까인데, 잡초는 공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여기 저기 자라나듯, 우리 일상의 습관도 그렇지 않은가 싶습니다. 세상에는 무슨 무슨 중독이라는게 많습니다. 그런데 처음 부터 그런 습관을 타고난 사람은 없었겠지요. 생각해보면 나쁜 습관이란 몸을 편하게 하든지 아니면 마음을 달콤하게 하는 쾌락이 있어서 아닌 줄 알면서도 ‘이번 한번만..마지막으로..’라는 자기 변명을 하며 반복적으로 행동하다가 결국 습관이 되었겠지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구구한 변명으로 끝까지 붙들고 있는 몇몇 습관들을 생각하며 동시에 내 나이도 생각해봅니다. 나이가 향기가 되기 위해서는 나이 만큼의 경륜과 나이 만큼의 인격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값비싼 장식으로 화려해지기 보다는 맑은 인격과 훈훈한 덕으로 나이값을 해야할 시절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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