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최근의 일간지 신문에 실린 칼럼 제목입니다. 세상이 이제 교회의 구원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부의 생각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심각한 상황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대해 실망하고 비판할 때는 그래도 아직 애정과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제 실망의 단계를 넘어 구원의 문제를 비웃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한 개인이나, 단체나, 한 나라의 역사도 마찬가지이지만 올바른 성숙과 성장을 이루려면 세 가지 요소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개인의 역량, 역사적 현장 그리고 시스템 운용이 그것입니다. 개인의 역량이란 개인이 지도자로서의 준비된 상태를 말하고, 역사적 현장은 그 조직 구성원과 건물과 기구들 같은 소위 하드웨어를 말합니다. 교회가 얼마나 좋은 위치의 건물과 선진화된 도구들을 갖추었는가를 말합니다. 시스템 운용은 구성원들의 철학,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그 교회가 얼마나 차별화되고 체계화된 교육과 프로그램들을 정착하고 운영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숙과 성장도 이 구성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을 도표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궁합을 이룰 때 시너지 효과를 내어서 그 조직은 발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 요소가 맞물리면 플러스가 아니라 곱하기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물론 단순히 수치로 계산하기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만, 예를 들어 개인의 역량이 10이고 역사적 현장의 준비도와 시스템의 운용 정도가 각각 10이라면 10+10+10=30이 되는 것이 아니라, 10×10×10=1000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준비된 정도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개인의 역량, 현장의 준비, 시스템이 각각 100이라면 그 결과는 100×100×100이 되어 1,000,000이 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이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역량입니다. 실제로 역사적 현장의 기초가 약하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 하나 없어도 한 명의 준비된 지도자에 의해서 엄청난 성장과 성숙을 이룬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양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준비된 지도자로서의 역량은 없이 교회의 환경을 탓하고, 교인들을 탓하고 프로그램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위치가 좋은데 우리 교회는 위치가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위대한데 교인들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내 꿈을 펼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히트 친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면 그것이 만들어진 철학은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교회에다 카피합니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프로그램은 카피해도 철학과 영성은 카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철학이 방법을 결정하는 것이지 프로그램이 철학을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전초기지인 교회의 성장과 성숙은 무엇보다 목사 개인의 영성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준비된 목회자가 없으면 아무리 거창한 역사적 현장을 가지고 있고, 대다한 시스템을 가져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실제로 LA에서 시내의 요지에 큰 자체 건물과 2,000명이나 되는 교인들이 있던 교회가 20명의 교회로 쪼그라드는데 단 2년밖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교회는 유지할 수가 없어 매각되었습니다. 그 비극의 원인은 단 한가지로 표현하기는 힘들겠습니다만, 목회자 개인의 역량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목회자가 준비되지 않으면 역사적 현장이 아무리 뛰어나고, 시스템 운영이 아무리 활발해도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단순 계단은 힘들겠지만 만약 목회자의 준비도가 제로(0)라면 모든 것을 제로(0)로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양적 성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시대 아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어떤 것 보다 목회자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누군가에게 자기를 드러내어 과시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냉정한 자기 점검과 자기반성과 자기 객관화 훈련을 통해서 계속 실력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목회자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세속의 문화를 흉내 낼 수도 없고 닮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세상을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그 속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하고, 교인들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말 내면의 준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교회의 위기는 결국 목회자의 수준의 위기, 준비도의 위기 아니겠습니까? 진정 이 시대의 목회자는 어떤 존재여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부터 그것을 함께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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