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는 내 이웃에 살고 있는 98세의 할머니다. 그녀의 남편 밀튼은 올해103세가 되어 이곳 라스모어에서는 아마 최고령의 노인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나이가 아니라 아직도 그들은 남의 도움 없이 자신들이 스스로 밥해 먹고 운전도 하며 집안 청소도 하고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끔 쓰레기를 들고 나오는 밀튼을보며, 아직도 쿡킹을 하는 일이 재밌다고 익살을 떠는 베티를 볼 때마다 나는그들에게 거의 경외심을 느낀다. 그들이 오래 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긍정적인 마음과 적극적인 삶의 태도는 정말 존경스럽다.
얼마전 밀튼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베티가 운전을 부탁한 적이 있다. 그녀덕에 나는 처음으로 스패로라는 수퍼마켙을 가보았다. 야채와 과일들이 싱싱하고 또 저렴해서 함께 쇼핑을 했다.
그곳에 먹음직스런 체리 파이가 있어서 베티에게 사지 않겠느냐 물었더니베티의 대답인즉 밀튼은 요즘 다이어트 중이란다. 그러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서 나는 내심 아니 백세가 넘은노인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다이어트를할까 하며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한번은 그들 부부가 우리에게 물었다. "만약 지진이 나면 극한 상황에 대비해서 마실 물과 여러가지 필요한 물자들을 준비해 두었느냐"고.
우리 부부가 고개를 흔들자 그들은차 트렁크를 열어 자신들이 준비한 음료수와 캔 음식들, 옷가지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주 자랑스럽게.
나는 순간 머리를 한대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들만큼 살려면 나는 아직도 25년 이상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들은 너무 모든 것을 안이하게 생각하며대충대충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정말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살고있는 것이다. 남은 삶이 얼마 남았는지모르는 우리 모든 노인들에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가치있는 일이다. 그들 모두의 인생이 얼마나 성공했는지 아닌지를 따지기 전에 모든 생명들은 귀중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우리들을 이땅에 태어나게해주시고, 애지중지 키워 주시고, 사랑해 주신 부모님과 그 많은 손길들을 생각해 볼 때 나머지 인생을 막 살아서도안되고 대충 살아서도 안된다. 여기에인생의 의미가 있다. 나는 아침에 눈 뜨면서 감사하고, 눈을 감고 잠 들기전 또감사한다. 하루를 어떻게 살까하고 고민하고, 어떻게 즐겁게 보람있게 살까를 생각하며 행복해 한다.
아침 일찍 운동을 하기 전, 나는 삼십분 쯤 천천히 언덕길을 걷는데 가끔마주치는 노인이 한명 있다. 잭이라고불리는 그 노인은 지금 88세인데 댄스광이라서 지금도 매일 저녁 운전을 하고 춤을 추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나간다고 한다. 그의 삶의 고올은 116세까지 사는 것이라고 해서 나를 놀라게한 적이 있다. 이곳 라스모어에서는 자신의 상대가 되는 춤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하루 두끼만 먹고도 건강하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라스모어라는 이 동네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렇듯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 모두가 한때는 다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얼마전에 11월의 노래‘ 노벰버 송’이라는 제목으로, 이곳에 살고 있는 작가인 에릭안슈츠가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책속에는 24명의 사람들의 인생살이가적혀 있었다. 아직 인생 중에서 12월은아니고 11월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내용이다. 각기 다 색다른 삶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베티는 함께 스토아를 갔던 날 내게고백을 했다. 자신이 얼마 전 마지막 러브 레터를 밀튼에게 썼다는 것이다. 내가 은근히 뭐라고 썼느냐고 물으니 "만약 우리가 죽어서 저 세상이 있다면 나는 그때도 밀튼을 사랑하겠다고, 그리고 밀튼이 먼저 죽는다면 자신도 그 옆에 누워 그냥 죽음을 기다리겠노라고,밀튼이 없는 이 세상에서 자신은 살 수가 없노라고…” 그녀의 음성은 떨리고눈가는 붉어졌다.
그 말을 듣는 내 마음도 숙연해졌다.
마치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들은지금도 서로에게 스킨쉽을 한다. 가끔내가 그들의 집을 들리면 밀튼은 지나가면서도 슬쩍 베티의 엉덩이를 툭툭치기도 하고 뽀뽀도 한다. 함께 걸을 때면 꼭 손을 잡는다.
사랑은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더 상대방이 측은하고 불쌍하게 느껴진다. 아마 그건 오랜세월을 함께 살아오며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서 이젠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자신의 모습처럼 애잔하고 연연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사랑을아마 우리 한국인들은 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젊을 때 지나간 뜨겁던 사랑도 아름다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면, 늙어가며마지막 삶을 함께 나누는 사랑도 그 못지 않게 더 애틋한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다 같은 날 함께 죽지는 못한다. 그러나 마지막 베티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둘이 손을 잡고 마지막 가는 길에 동행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이다. 둘이 칠십년이상을 사랑하고도 아직 더 사랑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베티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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