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왜냐하면 여행은 새로운 곳으로의 시작이며 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난 지금 막 알라스카 여행에서 돌아왔다. 짐을 풀자마자 밥을 앉혀놓고 이 여행기를 쓴다. 이번 여행에선 최고의 산해진미를 다 먹었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슬슬 집 생각이 나고 갓 지은 밥에 송송 두부를 썰어 넣은 된장찌게와 김치 생각이 간절히 났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인 것처럼 한번 한국인은 영원한 한국인일 수 밖에 없나보다. 미국에서 오십년 가까이 살아도 한국인의 입맛으로 길들여진 혓바닥은 좀처럼 변하질 않는다. 이번엔 스타 프린세스라는 배를 타고 크루스 여행을 11박 12일을 했는데 다른 어느때보다도 음식이 좋아서 그중에서도 칼라마리 스테이크나 입에서 살살 녹는 프라임 립과 알라스카 킹 크랩은 아마 밖에서 사먹는다면 백불은 주어야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우리가 탄 이 배는 이천 육백명의 손님과 천명이 넘는 종업원을 거느린 대형 배인데 이들이 하루에 먹고 마시는 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일 것이다. 알라스카는 그 땅덩어리의 크기가 텍사스의 두배인데 1867년 스워드 훨리라는 당시의 국무장관이 7.2 밀리언을 주고 러시아에서 사들였다고 한다. 처음엔 별 볼일 없어 보였던 땅이 나중에 금광이 터지고 또 오일 매장량이 굉장해서 말하자면 미국은 이 땅으로 해서 대박이 터진 셈이다.
처음 도착한 항구는 ‘쥬노’라고 불리우는 이곳의 수도인데, 만년설로 뒤덮힌 ‘멘덴홀’이라는 곳의 절경은 한폭의 그림 같아서 물위에 떠 있는 눈덮힌 산그림자가 너무 아름다웠다. 요즘도 가끔 곰들이 내려와서 연어를 잡아먹는데 여름엔 곰들이 산 위로 올라가서 온갖 종류의 딸기들을 따 먹고 동면 준비를 한다고 했다.
다음 기착지는 ‘스캐그웨이’라는 여름엔 인구가 이천명으로 불어나고 겨울엔 칠백명 쯤으로 줄어드는 작은 어촌인데 겨울엔 온도가 영하 칠십도까지 내려간다는 고장을 작은 미니 버스를 타고 산 꼭대기까지 갔다. 가는 동안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와 산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폭포들이 가히 절경이었다. 나이 지긋한 운전사가 가끔 길가에 차를 대놓고 이 고장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그 옛날 금광이 터졌을땐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캤지만 운반할 수가 없어서 얼어서 죽고, 굶어 죽었는데 그들이 타던 수많은 말들과 함께 죽어서 지금도 그 근처 골짜기엔 그때 죽은 사람들과 말들이 수천구씩 묻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차가 생겨났고 금들을 운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아이러닉한가? 많은 금을 캤지만 가져갈 수가 없어서 금을 움켜 쥐고 죽은 사람들의 욕심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돈만을 위해서 뛰어 다니는 현대인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재미 있는 것은 이 작은 마을엔 경찰관이 목사도 겸하고 있다고 한다. 노란 교회도 보이고 푸른색을 칠한 교회도 보인다.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이 작은 마을에 왜 교회는 몇개가 있는지 알쏭했다. 또 ‘캣취캔’이라는 다음 마을은 세계적인 연어 생산지인데 온갖 연어 가공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어느날 밤 문득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이 너무 좋아서 아예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둥그런 보름달이 밤하늘에 떠있고 그 달빛이 태평양 바다 물결을 수놓은 듯 비치고 있는 모습에 나는 취한 듯 한참을 서 있다가 이제는 저 세상으로 가버린 로라를 생각해냈다. 십년 전 나는 로라와 함께 알라스카를 여행했다. 그녀는 멋진 스카프를 날리며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바로 저런 베란다에 기대어 있었는데….
로라는 우리 딸의 시어머니로 그때 그녀는 바로 지금의 내 나이였다. 이제 또 십년쯤 뒤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느날 우리 곁을 떠나도 이 망망한 바다와 산위에 덮힌 만년설은 아마 영원히 이곳 알라스카에 남아 있을까. 마지막 기항지로 캐나다 땅인 빅토리아 섬에 도착한 날은 아주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서 여기저기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이곳엔 ‘부쳐 가든’이라는 유명한 가든이 있는데 그 곳에 가면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이란 꽃들은 다 모인 듯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유명한 정원은 ‘부쳐’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부쳐 가든’이 탄생한 셈이다. 이렇듯 이 세상의 역사는 부자라 해도 자신의 재산을 남을 위해 쓴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져 간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번 여행 중에 S라는 사람이 함께 했는데, 오랜 세월을 홀로 외동딸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서 좋은 사람과 결혼도 시키고 이젠 예쁜 두 손녀까지 보고 노후를 행복하게 보내는 그녀를 보며 홀로 살아도 저렇듯 당당하게 즐겁게 사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할 때 동행자는 아주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이면 그 행복이 좋은 바이러스가 되어 함께 행복해지고, 늘 우울한 사람과 함께 하면 우리도 모르게 우울해지기 때문이다.
문득 ‘받은 복이 많도다’라고 말씀하신 목사님의 설교의 한구절이 생각났다. 이젠 그 복을 남을 위해 써야 할 때다. 어디선가 쇼팽의 감미로운 멜로디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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