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Heaven confers is called “nature.” Accordance with this nature is called the Way. Cultivating the Way is called “education.”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천명지위성이요 솔성지위도요 수도지위교니라.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닦음을 교(敎)라 이른다.
영화 "역린(逆鱗)" 덕분에 중용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지혜를 다만 한 권의 책으로 엮으면 바로 ‘중용(中庸)’이 된다고 합니다. 절대계의 형이상학과 현상계의 실천덕목을 알맞게 버무려 ‘적중(的中)’의 진리를 자명하게 드러내는 고전 중용. 흔히 4서(四書) 중 하나로 알려진 중용은 미상불 4서의 결정판입니다.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하늘의 뜻을 본성으로 풉니다. 본래모습이란 겁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 안에 들어있는 ‘참나’요 ‘양심’이요 ‘성령’인 것입니다. 우리 안의 ‘어진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서로 사랑하고 예절을 지키고 정의롭게 살며 자명하게 판단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건, 우리가 알던 모르던 늘 그렇게 진행되는 중입니다. 하늘의 명(命), the Heavenly Commandments[천명(天命)]이 곧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의 양심/참나/성령은 곧 천명을 따르는 본성입니다.
맹자는 그 본성을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네가지 ‘실마리’[단서]로 풀어 이를 ‘사단(四端)’이라 불렀습니다. 어질고 정의로우며 에절 바르고 시비를 판단하는 지혜가 본래 하늘이 명한 본성입니다. 일부러 노력해서 얻어진 지혜와 능력이 아닙니다. 본래 타고난, 하늘로부터 ‘명(命)’받은 지혜와 능력이 바로 본성이요 양심이란 겁니다. ‘confer’는 주다/수여하다는 뜻입니다. 하늘이 준다고 영역한 ‘명(命)’은 ‘명령하다’는 뜻의 ‘command’가 더 제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흔히 ‘Commandments’를 ‘계명’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중용 1장의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또한 하늘이 계명으로 수여한 인간의 ‘본성’이라 이해합니다.
이제 하늘이 명한 ‘본성’이 ‘인의예지’ 4단의 실체인 양심이란 걸 알았으니, 본성을 따르는 ‘솔성(率性)’이 바로 ‘인간의 길[道]’임을 알게 됩니다. 양심이 명하는대로 사는 삶, 그게 바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의 삶입니다. 따로 배우고 알 일이 아닙니다. 하늘이 명한 본성대로 늘 그렇게 사는 것, 그게 바로 도를 닦으며 사는 인생입니다. 멀리 산중으로 떠날 이유가 없습니다.
’인의예지’ 4단으로 정리되는 양심, 하늘이 명(命)하신 ‘성(性)’을 따르는 ‘솔성(率性)’이 바로 ‘도(道)’입니다. 도인이 따로 없습니다. 누구든 하늘의 뜻을 거슬르지 않고 양심의 명령인 ‘인의예지’를 실천한다면 그분이 바로 진정한 도인입니다. 신통을 부리는 사람이 도인이 아닙니다. 진정한 도인이란, 평상심으로 살며 하늘의 뜻을 양심에 비추어 알고 실천하는 우리들 주위의 평범하게 ‘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중용 1장은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라 본성/양심대로 사는 게 바로 가르침이요 곧 ‘모범’이라는 말씀입니다. 도인 사는 모습, 그 자체가 바로 ‘교(敎)’가 됩니다. 예수님을 처음 따르는 제자들이 "스승님, 어디 사십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다만 "와서 보라"[Come and see.]고 간단히 답하십니다. 그저 와서 보면 안다는 겁니다. 성인의 사는 모습이 곧 ‘도(道)’요 ‘교(敎)’인 것입니다. 그렇게, 중용 제1장이 간결명료하게, 사뭇 긴박하게, 다만 열다섯 글자로 정리되는 것은, 그만큼 진리가 본래 자명하고 뻔한 것임을 재차 드러내고 있습니다. 4서의 첫번째 입문서인 ‘대학(大學, Great Learning)이 말하는 ‘명명덕(明明德)’ 또한 같은 말씀입니다. “To illustrate the illustrious virtue,” 이미 밝은 본성을 재차 밝히라는 가르침이죠.
What Heaven commands is called “nature.” Accordance with this nature is called the Way. Cultivating the Way is called “education.”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천명지위성이요 솔성지위도요 수도지위교니라.
"인간의 길: 양심이 답이다"를 온누리에 전하며 전 인류를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학당’ 대표 윤홍식 선생은 중용 제1장을 자상히 풀어 설명한 후, 이 모두를 다만 ‘황금률’의 실천이라 요약/정리합니다. 하늘이 명한 ‘성(性)’인 양심을 따르는 ‘인의예지’의 실천은 한마디로 "내가 받아서 좋은 걸 남에게도 하라," 또는 "내가 당해서 싫은 걸 남에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Treat others as you want them to treat you! 또는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이미 예수님께서 익히 하신 말씀입니다. 공자님 또한 훨씬 이전에 가르치신 그대로입니다. 진리는 늘 그렇게 스스로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The Golden Rule," 그 ‘황금률(黃金律)’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다시 외웁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지나 순하게 듣고 따르는 ‘이순(耳順)’을 지났음에도 여전히 외우고 또 외웁니다. ‘깨어있기’ 위해서입니다. 옛 선비들이 ‘거경(居敬)’하며 실천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맘껏 욕심을 부려도 양심을 어기지 못하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의 경지에 간신히 도달해볼까 하는 욕심[?]때문입니다.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천명지위성이요 솔성지위도요 수도지위교니라.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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