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인턴으로 근무할 때였다. 의무담당 과장인 닥터 더허티로 부터 호출이 왔다. 인자한 인상을 가진 아이리시계통의 백인 의사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내과 전염병과 부서에서 병리 부서로 옮기라고 했다. 전염병과에서 인턴을 담당하는 젊은 내과의사가 나와 영어 소통이 안돼서 가르치며 함께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영어가 별로 필요하지 않는 병리부서에서 현미경이나 보면서 일과 영어를 익혀 나가라는 것이다. 미국에 갓 와서 영어가 부족해도 대신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그런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영어에 능통한 14명의 다른 인턴들과 경쟁하며 가진 것이라곤 근면밖에 없어 그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고 한 시간 늦게 퇴근하였던 나로서는 참담할 뿐이었다.
내 표정에서 좌절과 실망을 읽었는지, 그는 미소 띤 얼굴로 방과 후 30분씩 매일 일대일로 자신의 사무실에서 같이 영어공부를 하자고 제의했다. 내과 교과서를 가지고 와 그의 앞에서 읽으라고 했다. 그 바쁘고 귀중한 시간을 할애 해주는 것이 이해되지 않아 의아해 하는 내게 그는 말했다.
“나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는가. 가랑비가 하루 종일 내렸었지. 인턴 관사 앞에 이삿짐도, 부인도 없이 혼자 비에 젖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이상야릇한 신발(한국 고무신)을 신고 있었지만 넌 약속시간을 정확히 지켰다. 그때 네가 남긴 강한 인상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고, 그게 너를 돕고 싶은 이유다”
닥터 더허티와 인턴 관사 앞에서 만나 안내 받기로 했던 그날은 어렵게 인턴 자리를 구해 필라델피아에서 뉴저지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이삿짐을 옮겨주기로 한 업소의 한인 밴 운전사가 바가 와서 안 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닥터 더허티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까지는 이사를 할 수 없었고 그와 연락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기차 시간 전에 노무자들에게서 운송차량을 구해보기 위해 우범지역인 필라델피아 역전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허름한 옷을 골라 입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어 장화삼아 한국에서 싸들고 온 흰 고무신도 꺼내 신었다. 혹 부딪칠 지도 모를 강도범들의 눈에 가난하게 보이려는 이민 초년생의 두려움이 연출해낸 피에로 같은 옷차림이었다. 결국 이삿짐 차량을 못 구한 채 나는 닥터 더허티와의 약속 시간에 맞추기 위해 그 차림 그대로 혼자 마지막 기차에 올라탔던 것이다. 이삿짐도, 아내도 동반하지 못한 이유에 대한 나의 설명이 그의 의구심을 이해로 바꾸어 놓으며 좋은 인상을 심어준 듯 싶었다.
인턴생활 11개월은 그와의 매일 30분씩 영어공부 아니, 인간관계의 친분이 쌓여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동료 인턴 14명은 나를 부러운 눈초리로 보았고, 고달프던 나의 인턴 인생엔 활기가 더해졌다. 비빌 언덕이라도 얻은 듯 인턴임무도 더 잘 수행해 나갈 수 있었다.
그는 명절이면 우리 부부를 꼭 가족모임에 초대해 한국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외로움을 덜어 주었고, 공휴일에는 바다낚시에도 데리고 다녔다. 조그마한 동양인 수련의가 측은해 보였었나(?)…
그 후, 그가 써준 과찬의 장문 추천서로 내과 레지던트, 흉곽내과 펠로우십을 차례로 거쳤다. 대학병원 펠로우십을 디트로이트에서 마친 후엔 뉴저지에 있는 유명한 원로 내과 의사와의 동업자리도 그의 주선으로 마련돼 있었다.
그 개업 석 달 전, LA의 USC 세미나에 왔다가 USC 의대 재학생중 40-50%가 동양인이라는 것에 놀란 나는 자녀교육을 위해서도 LA에서 개업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의 배려로 구해진 좋은 개업자리를 취소하여야 하는데 손쉬운 전화 통화보다는 직접 찾아가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첫 만남의 인연과 그간 듬뿍 받은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물론 이때는 고무신이 아닌 구두를 신었다.
피부색의 다른 것에 예민한 내 어린 자녀를 생각한 선택이 진로 변경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의 대답은, 당신에게 받은 모든 은혜를 갚지 못하고 떠난다며 고개를 떨구는 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젊은이, 너의 장래는 너 위주로 정해야 한다. 너의 선택과 네 가족의 만족이 최우선이다. 최상의 선택이면 그대로 실천하라. 부디 가서 좋은 개업의로 충실히 일하라. 그간의 호의를 나에게 되돌려 주려고 하지 마라. 언젠가 인턴 당시의 너와 같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았을 때 손을 내밀어 주면 된다”
남루한 옷차림에 고무신을 신고 지킨 약속, 그 작은 일 하나로 아무 대가 없이 주는 내리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내 일생의 여정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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