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윤 / USC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사서
“사십이 넘은 엄마가 어떻게 열두 살짜리 애하고 똑같이 싸울 수가 있어?”
“엄마는 열두 살짜리한테 뭘 그리 바라는 게 많아?”
사람은 누구에게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순간이나 말들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 두 문장이 그 한 예이다. 당시 열두 살인 딸과 옥신각신 하던 중에 딸이 내뱉은 말이 처음 문장이다. 순간 수습할 방법이 딸리자, 딸보다 두 살 많은 아들의 응원을 기대하며 확신에 찬 얼굴로 아들을 쳐다봤다. 내 기대를 완전히 저버린 아들이 내게 던진 말이 두 번째 문장이다.
양쪽에서 얻어맞고 온몸에 맥이 풀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겨우 버텨오던 엄마로서의 자존감이 완전 바닥나는 느낌이었지 싶다. 열심히 얻어들은 대로,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나름 현명한 엄마이고 싶었다. 그런데 고작 같은 수준으로 말싸움이나 하고 있는 ‘어른 애’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것도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다른 일들은 어찌 해내고 있나 살펴봤다. 다행히 다른 일들에서는 웬만큼 나이 값을 하고 있는 듯해서 한시름 놓았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노력을 하면서도 엄마 노릇 부모 노릇만큼은 항상 모르겠고 왠지 부족하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 일색이었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그리고 상황에 아주 쉽게 휘둘렸었지 싶다. 그리고 매번 돌아서서 후회하고 말이다. 덕분에 ‘어른 애’이던 내가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배우며 얼마만큼이라도 철이 들게 된 것이리라. 자식을 ‘밖에 있는 부모의 심장’이라는 말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과의 이 정도 해프닝은 애교 수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부모들이 경험하는 심장 오그라드는 강력, 초강력 사건들에 비하면 말이다. 어느 부모든 자식 보따리를 풀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밤은 기본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매 순간 가슴을 졸이며 길러온 자식들이 부모들 눈앞에서 바다에 수장 되는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 한달 전에 일어났다. 그것도 어른들을 믿고 기다리다 말이다. 이 참사를 생각하면 멀리 있는 나도 여전히 가슴이 먹먹한데, 유가족들에게는 그 고통의 무게와 깊이가 어떠할지 도무지 헤아려 지지가 않는다.
날이 갈수록 더욱 기가 막히는 소식들뿐이던 와중에 조금은 다른 글이 눈에 들어왔다. 심리치유전문가인 정혜신씨의 인터뷰 기사로 유족들과 생존자들의 치유에 관한 글이었다. 인터뷰 끝부분에서 그는 일반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에 책임이 있는 모든 사람과 구조를 샅샅이 밝혀내서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을 떼죽음으로 몰아넣은 독소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치유의 본질로, 정신과 의사가 1대1 심리 상담을 1천 시간 하는 것보다 1만 배는 더 치유적인 일이라고 했다. 정혜신씨의 이러한 말이 과격한 정치적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정치적 주장이 아닌 마음의 이치이고 치유의 근본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자식을 억울하게 잃고 난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달라지고 좋은 세상이 되어야만 아이들을 편안하게 놓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읽는 동안 나도 조금은 치유가 되는 듯 했다. 그런 세상이 곧 올 것만 같았나 보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다시 화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사건의 진상조사와 처벌이라는 당연한 일이 시민들이 요구를 해야 하는 일이라니. 게다가 이러한 요구가 정치적으로 해석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대한민국의 어떤 시스템들이 얼마나 고장이 나있단 말인지 더욱 암담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이 나에게는 점점 느슨해지고 있던 스스로를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시 엄마 역할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아이들은 둥지를 떠난 데다 지금의 관심사는 내게 주어진 다른 역할들과 그에 따른 책임들이었다. 적어도 내 직무유기로 인해 주위에 아니면 사회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악화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살피고 제대로 해나가야 하겠다. 그러다 보면 세월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그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날이, 그런 달라진 세상이 좀 더 빨리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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