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근로의 대가에 관한 기사 두 개가 눈길을 끈다. 하나는 연방 최저임금을 3년에 걸쳐 시간당 10달러10센트로 올리는 법안이 연방상원 공화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로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야후의 CEO인 마리사 메이어가 지난해 말 현재 야후 재직 1년3개월 동안 봉급과 주식 보너스 등으로 챙기거나 불린 돈이 무려 2억1,400만달러에 달했다는 내용이다.
메이어의 수입을 1주일에 40시간씩 62주 동안 일한 것으로 해 나눠보니 1시간에 거의 10만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연방 최저임금이 7달러25센트니 마이어의 시간 당 수입은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1만배를 훌쩍 넘는다. 신은 보통 사람들보다 1만배나 더 뛰어난 인간을 지어낼 정도로 불공평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런 불평등이 인간사회에서는 ‘능력’이라는 미명 아래 아무렇지도 않은 듯 횡행하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메이어의 수입이 능력이 아닌 100% 행운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야후의 실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메이어의 천문학적 수입은 그녀가 취임하기 훨씬 전인 2005년 야후가 지분을 사들였던 중국의 거대 인터넷업체 알리바바의 기업공개 계획 덕에 야후 주가가 덩달아 폭등하면서 벌어들인 것이다.
시간당 10달러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과 시간당 10만달러 수입을 챙기는 CEO는 미국이 두 개의 나라로 완연히 갈리고 있음을 극명하게 상징해 준다. 2012년 미국 CEO들의 수입과 일반 근로자 수입 간의 비율은 273대1이었다. 1970년대 후반 승자독식 원리가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CEO들의 수입은 875%가 뛴 반면 같은 기간 근로자 수입은 5.4% 증가에 머물렀다.
이런 병리적 상황에서 CEO들의 수입을 제한하자는, 이른바 최대임금(맥시멈 웨이지)법 제안이 나오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가장 일반적인 제안은 CEO 연봉을 그 회사 최저 연봉자의 100배로 하자는 방안이다. 이 안은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직원들 처우가 좋아져야 자신의 수입도 늘어나는 만큼 직원 복지가 CEO에게 인센티브로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최대임금 규제 아이디어에 대해 자본주의 정신에 어긋난다는 저항과 반론이 거세다. 또 시간당 10달러를 주자는 안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최대임금 규제를 기대하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그렇지만 무언가 양극화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계층 간 간극을 줄여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이런 아이디어를 낳고 있는 것이다.
CEO들의 과도한 보상에는 ‘제도화 된 절도’라는 명예롭지 못한 비판이 따라 다닌다. 비판도 비판이지만 과도한 보상은 오히려 기업의 실적을 해치기 일쑤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미 연방은행이 실시한 한 연구에서 현금 인센티브는 긍정적 동기가 되기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초점과 사고범위를 좁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증권 브로커와 펀드매니저들이 마켓을 이기기 위해 그들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인지적 착각이며, 그들의 수입은 순전히 운에 따른 보상일 뿐”이라는 행동경제학의 대가 다니엘 카너먼의 지적 또한 과도한 보상의 비합리성을 언급하고 있다.
금년 들어 미국에서 가장 활발히 일고 있는 논쟁은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젊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기념비적 저서 ‘21세기의 자본’이 출간된 이후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이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부의 증가가 소득 증가를 훨씬 빠르게 앞지르면서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지고 있으며 이것을 그냥 방치할 경우 민주주의 사회를 위협하고 계급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얼마 전 수학자들이 이론적 모델을 이용해 예측한 미래와 섬뜩할 정도로 똑같다. 수학자들은 “빈부격차 심화로 인한 경제 불안정과 자원 고갈로 현대문명이 향후 수십년 내에 붕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등지수가 높은 사회일수록 평화롭고 구성원들의 육체와 정신 또한 건강하다는 것은 이미 실증적으로 입증됐다. 반대로 불평등이 고착화 된 사회에서는 부자들도 그리 행복하지 못하다. 자기만 아는 일부 부자들은 물론, 이들의 이익을 결사 보위하는 데 혈안이 돼 있는 정치세력들은 “공존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공멸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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