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칠십쯤 넘어 살다보면 저절로 깨우쳐 지는것이 하나 있는데 인생에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무슨 일이 났다해도 당장 죽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되고 말하자면 좀 인생을 느긋하게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승자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요 오늘의 패자가 영원한 패자로 남는다는 법도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의 재미다.
내 딸의 사십여년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 중에 어이없는 일도 재미있는 일도 또 고난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잘 나가는 변호사로 또 아내로 세 아이들의 엄마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얼마 전 로스엔젤스에 출장차 가서 하룻밤을 친구와 보내고 온 적이 있었는데, 메간이라는 그 친구는 로스쿨을 다닐 때 가장 친하게 몇 년을 지낸 친구다. 그 친구는 사십이 한참 넘은 나이에도 아직 싱글인데 십년을 넘어 사귄 남자 친구가 현재 뇌암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딸이 17년 전 한국에 놀러 갔다가 캐나다 남자애와 사랑에 빠져 우리 부부도 참석치 못한 결혼을 태국에 날아가서 하고 삼년을 한국에 살면서 변호사로 일도 못하고 그야말로 썩고 있을때, 그 메간이란 친구는 연봉을 억대 이상을 받고 승승장구하고 있어서 나는 속으로 은근히 그 친구가 부러웠고 딸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다. 이제 십여년의 세월이 흘러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메간이 우리 딸을 부러워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젠 딸의 연봉이 더 높고 딸은 남편도 있고, 자식도 세명이나 된다. 어젯밤엔 딸이 전화를 해서 스티브(사위)가 요즘 잠을 잘 못자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너무 행복해서라고 말해서 함께 크게 웃었다. 사람은 너무 행복해도 너무 불행해도 잠이 안오나 보다. 우리 사위는 금융계에 있는데 한동안 벌이가 줄어서 좀 기분이 쳐져 있다가 요즘엔 다시 살아났다. 주식 시장이 요즘 살아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이 처해 있는 주위 상황으로 인해 행복해 하기도 불행해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황금 때문에 또는 건강때문에 울고 웃는다. 내 주위에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요즘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데 한그루 나무나 한송이 꽃을 보고도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 진다는 것이다. 왜 옛날엔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이 있어도 돈 일이불을 아끼는라 전전긍긍 했던것이 그렇게 바보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젠 다시 그렇게 살지 않겠어. 남은 인생은 먹고 싶은것 다 먹고 하고 싶은 것 하며 마음대로 살거야" 그렇게 다짐하는 그녀를 보고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일생을 자식 뒷바라지 하고 부지런히 일해서 노년은 아주 편안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젊어서 열심히 일한 댓가로 돈은 벌었지만 건강을 잃은 경우가 허다하다. 내 남편도 얼마 전에 백내장 수술을 했고, 다리도 부실해서 이젠 아주 잘 걷지를 않는다.
의사들은 늘 많이 걸으라고 권한다. 걷지 못하면 그 인생은 끝이라는 것이다. 사실 잘 걷지를 못하고 보폭이 좁아지면서 각종 질병은 찾아오게 된다. 이년 전쯤 죽은 내 친구도 몇 년전 함께 여행을 한 적이 있는데, 공항에서 잘 걷지를 못해 난 속으로 좀 이상하다 생각했던게 그게 그 친구의 병의 전조 현상이었다. 갑자기 그녀의 걸음걸이가 보폭이 좁아져서 마치 옛날 전족을 한 중국 여인네 들이 뒤뚱뒤뚱하며 걷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좀 우습기도 하고 놀란 적이 있다. 일년쯤 후 그녀는 폐암에 걸렸다.
살아서 그렇게 의가 좋기로 소문난 그녀의 남편은 곧 재혼을 한다는 소식이다. 역시 산사람은 살아야 하나보다.
이년 전 고국으로 영구 귀국하셨던 언니가 얼마 전 미국에 다녀 가셨다. 주위에 있는 내 친구들과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이구동성으로 친구들이 언니의 건강을 입에 담았다. 올해 88세인 언니가 걸음도 우리보다 더 빠르게 걸으시고 우리와 함께 한 아침 운동도 다 잘 따라 하셔서 모두들 언니의 건강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언니는 일생을 참으로 한 많게 사신 분이다. 마음 고생, 육체적인 고통도 많이 겪으셨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약 십년을 일하신 댓가로 소셜 시큐리티를 오백불 쯤 받으시고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한국 정부에서 주는 약 십만원쯤 되는 돈과 85세 이상이면 한달에 사만원을 장수 수당을 주는데 그것도 받으신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더 늙으면 우리 모두 한국으로 귀향하는게 더 낫지 않느냐고 우스개로 한마디씩 했다.
사실 사설 계통의 양로원은 수천불을 호가하니 왠만한 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엄두도 못내고, 싼 양로원은 자긍심을 가진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 역부족이어서 그런 것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우울해진다. 지금 라스모어에 사는 사람들은 행운아들이다. 얼마 전 보스톤에 살고 있는 딸을 방문한 또 다른 친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야"라고 말했다. 아직도 보스톤은 한겨울인데 이곳 캘리포니아는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주변과 맑은 공기, 좋은 물과 모든 운동을 공짜로 할 수 있는 시설이 다 있어서 얼마나 고맙냐고 말했다.
며칠 전엔 친구들과 새로 지은 이벤트 센터에서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모찰트와 베토벤의 교향곡 칠번을 감상했다. 오랫만에 가슴 속에선 음악이 주는 감동과 환희로 떨리고 벅찼다. "오늘 잠자기는 다 글렀네"라고 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정말 승자인가 패자인가 오늘 친구 모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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