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윤 / USC 동아시아 도서관 한국학 사서
필라델피아에 4박5일 출장을 다녀왔다. 일단 집을 나서는 스케줄이 잡히면 내 마음엔 풍선들이 둥둥 떠다닌다. 짬짬이 구체적인 상상을 동원해 탐방계획을 세우면서 혼자 헤죽거리곤 한다. 아마 흔히 볼 수 있는 여행 전 증후군일 게다.
출발 일주일 전, 부푼 마음으로 투어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필라델피아는 4년 전에 일주일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어땠더라? 어딜 갔었지?’ 처음에는 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차분히 숨을 고르고 기억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는 순간 예쁜 풍선 하나가 둥실 떠오르며 한 갤러리 이름을 확인시켜주었다. 바로 반스 파운데이션(The Barnes Foundation)이었다.
지난번 필라델피아 출장을 계획할 때였다. 아들이 꼭 가보라고 추천하며 이 갤러리와 관련된 다큐멘터리(‘The Art of the Steal’)도 소개해 주었었다. 그 때만 해도 ‘어느 부자가 예술 작품들 좀 모았는데 죽은 후 운영에 문제가 생겨 이슈가 되나 보다’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는 미술관의 위치가 필라델피아 시내가 아니고, 예약을 아주 일찍 해야 하는 등 조건이 맞지 않아 가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지는 않았다. 물론 필름도 보지 않았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반나절의 여유가 생기자 선뜻 반스 컬렉션을 보러 나섰다. 거리가 가까운 것도 한 몫을 했다. 주중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다행히 예약 없이도 입장이 가능했다.
건물 전체의 첫인상은 매우 단아하고 소박했다. 전시실이 23개라니 시간을 잘 배분하면 별 문제없이 다 섭렵할 수 있으리라 계획하며 서둘러서 첫 번째 방으로 들어섰다. 이 마음 바쁜 관광객의 기세는 첫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완전 꼬리를 내렸다. 입이 떡 벌어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얀 벽이 대부분인 보통의 갤러리와는 달리 온 방에 온 벽에 빼곡하게 그림이며 예술품들이 꽉 차있었다. 그것도 나 같은 문외한도 알아볼 수 있는 유명작가들의 작품들로 말이다.
그런데 진열도 독특하다. 보통 익숙한 시대별 작가별 진열이 아니다. 뭔가 비슷하거나 아주 색다른 그림들이 조각과 장식물들과 함께 모여 여러 가지 느낌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같은 여자, 남자, 아이들, 꽃, 공원들인데도 너무 색다른 얘기들을 각각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내 속에서는 오랫동안 그 존재조차 모르게 묻혀있던 갖가지 감각들이 죄다 살아나 아주 신바람들을 냈다. 얼마나 이렇게 있었을까. 순간 ‘이러다간 반도 못보겠구나!’ 하며 다시 관광객 마음이 되살아나 걸음을 재촉해 두 번째 방으로 갔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벅찬 가슴으로 23개 방을 다 둘러보기는 했다. 정신이 들고 보니 다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목도 마르고 피곤한데 아쉬워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미 한 미팅세션은 늦어 버렸다. 워싱턴에 사는 같이 간 친구는 주말에 남편이랑 다시 오겠단다. 부럽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한일이
을 찾느라 넷플릭스를 뒤지는 것이었다. 빙고! 진한 감동 끝의 아쉬운 부분과 궁금한 점들을 이 영화가 보충해 주었다.
알버트 반스. 1872년에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가정교사, 권투선수로 등록금을 벌며 펜실베니아 의대를 졸업하고 개발한 약이 성공해 제약회사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1922년 예술교육 목적으로 필라델피아 교외에 반스 재단을 설립했지만 1951년 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재단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2012년 소장품과 재단이 필라델피아로 옮겨오게 되는데 그 오랜 법적 투쟁과정을 이 다큐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그리고 초기 현대미술 작품의 세계 최고 개인 컬렉션으로 꼽히는 이 재단의 소장품은 전체 가치를 헤아리기가 어렵단다. 세잔느 작품은 파리 전체 소장품 보다 많고,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고흐, 고야, 엘 그레코, 드가, 루소, 모네, 쇠라 등 전체 소장품이 6천점을 넘는단다.
Dr. Albert Barnes! 예술과 그 교육에 품은 당신의 큰 뜻 덕분에 이번 여행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후 행복 증후군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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