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딸한테 말을 해도, 그저 ‘할 게 많아서 그런 걸 어떡하느냐’고 하는데, 얼마나 안쓰럽던지...” 타주에 사는 딸을 방문하고 온 선배가 고등학생 손자가 밤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있는 걸 안타까워하면서 말했다.
고등학생의 수면부족이 새로울 것은 없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도 입시준비하며 가장 어려웠던 것이 잠을 쫓는 일이었다. 미국에서 자란 우리아이들도 고등학교 때부터 수면 부족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아이들이 밥을 맛있게 먹는 것 보다 잠을 푹 잘 때가 제일 흐뭇하다. 지금도 아이들이 전화를 하면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게 잠을 충분히 자느냐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 정책연구원이 최근 9,500 여명의 초(4학년 이상) 중고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2013년 한국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27분으로 4년 전보다 1시간 줄었다. 통계는 학생들의 수면시간을 다양하게 분류해 비교했다. 예를 들면 경제적 수준에서 하위권 학생들의 수면시간이 상, 중위권 학생들보다 적었고, 학업성적에서 하위권 학생들이 상, 중위권 학생들보다 덜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자료에서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고등학교를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이었다. 이런 저런 특별한 고등학교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설문조사도 나누어서 하는 걸 보면 각 유형의 특성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말이다. 특히 일반/특목/자율 고등학교를 함께 묶고 특성화(직업)고등학교를 따로 집계했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등학생 평균 수면 5시간 27분의 통계결과도 특성화 고등학교는 제외한 자료였다. 특성화 고등학생들은 거의 1시간 더 자는 것으로 나왔다.
여러 미디어가 이 통계자료를 다각도에서 분석하는 기사를 실었지만, 한결같이 고등학생 통계는 특성화고 학생을 제외했다. ‘고등학생(특성화고 제외) 5시간 27분’식이다. 조사 대상 고등학생 중 18%가 특성화 고등학생들이었건만 그들의 수면시간 6시간 11분이라는 자료는 어디에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을 제외해야 정확한 고등학생 자료가 나오기 때문에 그들을 따로 분리했다는 해석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들어가지 않은 자료가 필요했다는 말인가?
수면시간 설문조사에서 마저도 입시 위주의 고등학교와 그렇지 않은 고등학교를 구별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 전 인터넷에 실렸던 한 고등학생의 사연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학생은 자신을 “S 대학에 많이 간다는 외고를 다니는” 고등학교 2학년 생으로 소개하면서 상담을 청하는 글을 올렸다.
그 학생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부하고 학원가고 1시까지 공부하고...” “대학은 가야 되고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못 가면 동창회 못 나오고 고등학교 친구들 연락을 끊어야 하는데...”라고 쓰며 자신의 일과를 아주 상세히 나열했는데, 읽으면서 숨이 막혔었다. AP, SAT 등 미국의 고등학생들이 치는 시험을 비롯해 들어보지도 못한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자신의 사연을 이렇게 끝내고 있었다. “저의 소원은요...자는 거예요...도와주세요.”
이 학생의 글이 생각난 이유는 위의 통계자료의 설문 중 하나 때문이었다. 중고교생 응답자 중 37%가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가슴을 섬뜩하게 하는 말이다. 학생들이 자살을 생각한 원인으로는 ‘학교 성적’(40%)이 1위로 꼽혔고 ‘가족 간의 갈등’(28%)이 뒤를 이었다.
‘잠을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호소한 한 학생의 절규가 그 학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통계로 검증되었다.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우리는 아이들의 이 소박한 소원을 들어주어야한다. 이향아 시인이 노래하는 것처럼 적어도 ‘오늘 잠은 오늘’ 잘 수 있게 해주어야 하겠다.
“밤은/ 잘 익은 수박 속같이/ 깊고 화려하다/ 되돌아서지 못하는/ 시간의 벼랑에서/ 아이야/ 자정에 쫓기어/ 내일로 밀려나기 전에/ 여기서 눈을 감고/ 뛰어내리자/ 봄바람에 실려 가는 살구꽃처럼/ 살구꽃 여위고 선 꽃자리처럼/ 황홀히 눈을 감고/ 잠기어 들자// 옛날부터 귀 아프게 배워서 알지/ 성경 구절처럼 너도 배워서 알지 왜./ ‘오늘 일은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우리도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아름다운 눈물의 고요에 젖어/ 먼 나라를 꿈꾸는/ 깊은 밤의 정수리에/ 밀물져 기다리는 내일이 있다// 여기서 담판을 짓듯/ 우리도 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오늘 잠은 오늘 잠들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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