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의 평균 건강 나이가 육십오세라는 숫자가 나왔다. 건강 나이는 말 그대로 아프지 않고 병 없이 사는 나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십여년 가까이 몇가지의 지병을 갖고 골골 대며 산다는 것이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해도 병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삶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삶다운 삶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현대 의학의 놀라운 발전으로 현대인의 수명은 늘었으나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이기 때문이다. 주위를 돌아보아도 모두다 두세개의 약들은 챙겨 먹는다. 옛날 같이 콜레스톨이나 혈압약들이 없었을 때는 이미 이세상에 없었을 목숨들이다.
우리 어머니도 오십의 나이로 뇌졸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우리 형제들 모두가 혈압약을 먹고 있다. 오빠는 몇달 전 유명을 달리 했으나 위로 언니 둘이 지금 팔십대인데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는 셈이다. 나도 이제 칠십대 중반이지만 건강한 편이어서 따지고 보면 나는 십년 이상을 건강 나이로 산 셈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라스모어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통계를 냈는데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평균 수명은 칠십육세이고 죽는 사람의 평균 나이는 구십일세라니 그야말로 장수촌인 셈이다.
좋은 공기, 좋은 물, 적절한 운동과 음식들을 골고루 좋은 것만 골라 먹는 편이니 장수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일께다. 오늘도 나는 언덕길을 천천히 십여분 걸어서 매일 아침 육통권이란 운동을 하기 위해 힐사이드 클럽에 도착한다. 언덕길 옆에 언제 피어나기 시작했는지 자목련들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황홀한 모습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연발하며 잠시 동안 그 아름다움에 매료 된다. 이런때 나는 ‘아! 아직은 살만해!’하고 외치며 그 행복감을 만끽한다.
운동에 약 사십여명이 나오는데 이제 한국사람들만 거의 이십명을 육박하기 때문에 백인들과 중국인의 숫자를 거의 능가하게 되었다. 뿌듯하기도 하고 우스개로 약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운동이 끝난 후 커피샾으로 몰려가서 보통 때는 남자들은 남자대로, 여자들은 여자대로 앉아서 수다들을 떠는데, 남자들도 여자들 못지 않게 모이기를 좋아해서 남녀의 관계 없이 이렇게 스스럼 없이 시시 때때로 만나고 토론하고 놀 수가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닫는다. 혼자 웃는 것도 좋지만 함께 웃으면 엔돌핀이 몇배나 더 증가한다는 논리도 있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실감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우리들은 잠만 따로 자지 오분이면 다 만날 수 있는 곳이 또한 이곳이기도 하다.
나는 가끔 심심하면 토크쇼를 보는데 한국 남자들이 기가 죽은 때가 월급을 타서 척 아내에게 건넬 때만 해도 살만했는데, 월급들이 바로 통장으로 자동 입금이 되면서 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들이 아내들 몰래 자기만의 비자금을 만들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의 기준을 삼백만불이라고 했다. 또 한사람은 기죽지 않고, 사람답게 적절한 품위를 유지하며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건강, 적절히 쓸 수 있는 돈,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일과 주변에 친구들이 있으면 나는 부자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은 누가 부자이고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현재의 상태가 건강하고, 밥을 먹을만 하고, 자식들이 속 썩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오늘을 얼마나 잘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늙어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아직도 내 손으로 밥해 먹고, 가끔 이웃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맛있는 것을 해 먹을 수 있고, 내 다리로 걷고, 좋은 책들을 돌아가며 읽을 수 있는 지적인 정열이 남아 있다면, 또 믿음이 있어서 마음 속에 평화가 있고 죽어서 천국행을 바랄수 있다면, 이만하면 아직은 살만하지 않은가?어제는 이웃인 베티 할머니가 구십팔세가 되어서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며 볶음밥에다 돼지고기 갈비를 바비큐 해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제 백삼세가 되었다. 아직 건강에 별 문제가 없이 사는 것을 보니 거의 경이로운 수준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며 천천히 뜨거운 커피를 한잔 만들어 마신다. 생각해보면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며 무엇을 할까를 약간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작은 행복의 하나다. 2월달은 내 생일이 있어서 여러 친구들이 밥을 사주고, 예쁜 카드와 선물도 주고 해서 나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칠십이 넘어도 매일 매일이 바쁘고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으니 이만하면 살만하지 않은가.
또 매주 목요일은 내가 손주 녀석인 세살배기 니코를 프리스쿨에 가서 픽업해서 그 녀석과 데이트를 한다. 가까운 중국집에 가서 그애가 좋아하는 차우면을 먹이고 근처 공원에도 가고, 어느땐 맥도날드에 가서 놀이기구를 타며 놀기도 한다.
요즘엔 말이 늘어서 계속 ‘와이?와이?’를 물어서 골치다. 얼마전 내가 오랫만에 파마를 했더니 "끄랜마! 유 룩스 훠니!"하면서 배시시 웃는다. 차 소리를 듣고 벌써 두들이란 강아지는 달려 와서 꼬리를 흔들며 내 발 뒤꿈치를 계속 물어댄다. 니코가 달려가서 개를 끌어 안는다. 이런 천진한 모습은 나를 잔잔한 행복으로 이끌며 ‘아! 아직은 살만해!’라고 속으로 외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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