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annot solve our problems with the same level of thinking that created them.
문제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생각의 수준으로 그 문제들을 풀 순 없다. [아인슈타인]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야릇한 질문 하나가 대한민국 땅을 어수선하게 하는 요즘입니다. 부드러운 선동입니다. 세상에 늘 안녕할 사람이 어느 천지에 존재할까요? 다들 불안하고 다들 평안치 못한 게 세상입니다. ‘고해(苦海)’요 삼사라[Samsara]입니다. 세상은 고통의 바다입니다. 다들 안녕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슬쩍 "안녕들 하십니까?"하고 묻는 건 발칙한 선동입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잔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안녕하지 못하다는 컨센서스[consensus, 동의]를 끌어낸 몫은 인정합니다. 깨닫지 못한 삶은 너나할것 없이 안녕하지 못하니까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사실 매우 형이상학적인 물음입니다. 깊은 숙고와 사색, 그리고 지극히 고요한 명상 속에서 체험하는 초월의 경지를 모른다면, 세상은 한갖 ‘고해(苦海, the Sea of Suffering)’일 뿐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보는 ‘정견(正見)’의 눈을 가진 이에게 이 세상은 장엄한 ‘대방광불화엄(大方廣佛華嚴)’이요 다만 찬란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나라’일 뿐입니다. 이미 도래한 하늘나라,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은 안녕하지 못합니다. 다만, 하늘나라가 이미 ‘지금/여기[Here & Now]’에 활짝 피어나고 있음을 제대로 보는 사람들만이 ‘늘’ 안녕합니다.
The secret is that the level of the problem is never the level of the solution.
비밀인즉, 문제의 수준은 결코 해법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Deepak Chopra]
문제가 생긴 의식 수준으로 그 문제들을 풀 수 있을까요? 괴롭다고 생각하는 마음으론 괴로움을 떨쳐내기 힘듭니다. 괴로운데 왜 괴롭지 말라는 건지 도대체 접수[?]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괴롭다는 데 왜 당신들이 수선 피는 거요? 난 그저 괴로울 뿐이요. 너나 잘 하세여! 그렇게 단호하게 괴롭기로 작정한 사람의 의식수준으로 괴로움을 해결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초월적 인식이 탁월한 겁니다. 문제를 일으킨 수준을 넘어서야 비로소 문제를 풀게 됩니다. Problems cannot be solved with the same mind set that created them.
아니, 문제가 사라지는 겁니다. 문제가 풀리는 게 아닙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애당초 문제가 아니었음을 직시하는 겁니다.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큰 그림 [the Big Picture]’을 보는 시각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괴로움은 떨어져 나갑니다. 새옹지마의 교훈이 바로 그겁니다. 세상살이의 구석구석에 내재한 교훈을 배우고 터득하자는 게 이번 인생의 목적이 아니던가요? 다들 안녕하기만 하다면 굳이 인생을 사는 의미가 뭘까요? 안녕하지 못하지만, 그 안녕하지 못함 속에서 심오한 인과율을 깨닫고 지혜의 눈을 뜨게 되면, 그땐 당연히 모두 안녕하게 됩니다. 나도 안녕, 당신도 안녕, 그러니 세상이 온통 안녕입니다.
The secret is that the level of the problem is never the level of the solution. 비밀인즉, 문제의 수준은 결코 해법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씀을 그대로 원용하는 디팍 쵸프라 박사의 최근 저술의 제목은 "Spiritual Solutions." 모든 문제의 해법은 오로지 영적이란 겁니다. 물질적 수준의 괴로움, 그 뿌리는 영적 무지입니다. 영적인 각성이 일어난 이에게 더 이상 세상의 괴로움은 없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뿌리를 관통하는 ‘그 질문들[the Questions]’이 사라지고 난 그 자리엔 그저 연꽃 한닢이 덩그랗게 피어 날 뿐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 났으며 어디로부터 왔는가?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죽은 뒤에 나는 어디로 가는가? ...... 이런 질문들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면 ‘고해(苦海)’입니다. 이런 의문들이 송두리째 뽑혀나간 수준에 들면, 인생은 한 바탕 신나는 굿판입니다. 신명(神明)나는 삶을 진하고 멋지게 살다 가는 것, 그게 바로 내 삶의 의미요 목적이란 걸 아는 수준에 이르면,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풀리는 게 아닙니다. 사라집니다. 더 이상 그런 질문들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자르십니다. 간단히 가르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마태 6:33] But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and all these things will be given you besides." 우선, 중요한 의문부터 해결하라. 그럼, 모든 곁가지 의문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이보다 더 찬란한 가르침이 있을까요?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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