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나이가 들어가니까 전에 없던 버릇이 생겼다. 그것은 신문의 부고 난을 보면 사망자의 나이부터 보는 것이다. 전에는 망자가 혹시 아는 사람인지? 아니면 내가 아는 누구의 뭐 되시는 분인지 싶어 유족 이름을 보고 호상이 누군가 살폈는데 요즘엔 망자의 나이부터 본다. “이분은 몇 살까지 살고 가셨나?” 그리고 내 나이를 헤아려 본다. 지금까지 나는 죽음이란 아주 까마득 먼 곳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가까이 오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는 요 몇 년 사이로 형제 보다 더 가깝게 지내던 친구들 몇을 먼저 보냈다. 우리가 사는 은퇴 타운 “Rossmoor” 에 현재 살고 있는 사람 평균 연령은2010년 통계로79세. 그러니까 78세까지는 “아직” Young이고 80세부터는 “약간” Old가 된다.
90세 이상 노인들은 수두룩이고, 104살 드셨다는 이웃할아버지는 지팡이도 없이 잘만 걸어 다닌다. 이 할아버지는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게 인사한다. “Good Morning!”목소리가 얼마나 맑고 깨끗한지 소리만 들으면 청년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클럽 하우스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어서 누구든지 흥이 나는 대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매일 왕년의 피아니스트 – 그러니까 젊은 시절 음악선생, 교회 반주자, 피아노 연주가 - 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시간 시간 멋진 연주를 들려준다. 점잖은 영감님들, 곱게 화장을 한 할머니들이 화사한 정장 차림으로 와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신문 잡지를 읽으며 피아노 연주를 곁들여 감상한다.
나는 지금까지 여인의 아름다움은 젊음에 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에 이사 오면서 나이 드신 여인의 아름다움도 이에 못지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美를 보는 나의 눈이 달라진 것이다.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노부부의 사진을 붙여놓고 “아름다운 노년”이라는 문구를 써 넣은 보험회사의 광고판 같은 것도 본다. 아름다운 노년이라?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어 실소(失笑)하지만, 별로 기분 나뿐 소리는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삶이라는 무거운 껍질을 한 꺼풀씩 벗어 버리고 가벼움과 자유로움의 본질로 다가간다고 생각하면 노후야 말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해질 무렵 나머지 황금 햇살을 맘껏 뿌리는 장엄한 석양 노을처럼. 나의 동서가 되는 박 목사님은 몇 년 전 은퇴를 하셨는데 이 분의 큰 즐거움 중에 하나가 한 달에 한번 목사님들의 등산모임에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갈 때는 음식을 항상 푸짐하게 준비해서 가지고 간다. 김밥도 몇 사람 분을 더 하고 과일도 더 준비하고 음료수도 이왕 가져가는 것 넉넉히 준비한다. 늙을수록 주머니는 열고 입은 닫으랬다고 이런 것 별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맘 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나는 장소에는 약속 시간 보다 일찍 가서 기다린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젊은 목사님들이 “저 노인 목사님 때문에 늦는다”는 볼멘소리가 행여 나올까 싶어 조심스러운 것이다. 어울릴 때 말은 적게 한단다. 말이 많으면 모두 싫어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조심해야 할 것이 많아진다. 몸을 자주 씻어 깨끗하게 해야 손주들이 가까이 온다. 복장 역시 단정해야 젊은이들과 어울릴 수 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뭐 하는 분이세요?” 묻기에 “그냥, 사는 사람입니다” 대답하고는 맘이 편했다는 어느 은퇴 언론인이 쓴 글을 읽었다. 얼마 전까지도 주요 일간지 사설에 날카로운 필봉을 휘돌던 쟁쟁하시던 분이다. 그 분은 그날 모임에서 제일 끝자리에 앉아 말 한마디도 안하고 듣기만 했단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가운데 앉아 세상일에 통달한 듯 떠들어 대는 저 멍청한 놈은 언제 사람이 될까? 조심해야지. 나도 조금만 방심을 하고 입을 놀리면 “저 멍청한 놈” 소리를 듣게 될 터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운명론자가 되어 감을 느낀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주신 축복은 꼭 같은 100이라는 숫자이다. 이걸 많이 주셨으면 저절 적게 주시고 저것을 적게 주셨으면 이것을 많이 주셔서 합계100을 채워 주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주셨거나 받은 것에 감사하는 생활이 바로 축복 받은 삶이라는 것도 요즘 깨닫는다. “누구의 집엔들 명월과 청풍이 없으랴 (誰家無明月靑風:수가무명월청풍)” 이 글은 벽암록(碧巖錄)에 나오는 글인데 내 대로 해석하면 “어느 누구의 집에도 똑같이 달은 밝게 비치고 바람은 맑게 불어준다” 는 뜻이다. 나는 하나님이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소중한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라이프 사이클 (Life Cycle) 중에서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단계에 있는 사람이 바로 노인들이다. 나이가 드는 그 만큼 “주님을 뵈올 날이”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이다. 그렇다. 늙을수록 죽음의 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신(神)의 세계로 차츰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의 삶은 스스로를 가볍게 하는 것이다. 산에 오를 때 겉옷을 벗듯이 명예 자존심 따위를 벗어 던지고, 스트레스 원인이었던 욕심을 내려놓고, 나중에 가져가지 못할 재물을 미리 미리 내려놓는다.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만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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