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예술가들에게는 환상의 시간이다. 대낮 햇빛 가득찬 풍경 속에서 외출했다가 밤에 돌아올 때는 검은산덩어리 그리고 검고 어두운 하늘을 향해 타오르는 듯한 나무들은 같은 길이 아주 다른 길이 되어 수없는 환상과 회상의 유희의 다리를 놓아준다.
24번 프리웨이에서 680 사우스를 타고 얼마간 가면 왼쪽 산꼭대기 위에 높고 거대한 기둥들 위로 불을 비추어 파르테논 신전 같은 대저택이 나타난다. 나는 순간 그리스 아테네에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킨다.
30세말 나는 신화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미쳐 이태리로 여행하다가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그리스로 떠났다. 아테네에 늦은 시간 도착해 파르테논 신전을 가기 위해 처음 가는 어두운 길을 계속 이어지는 작은 골목들을 미로를 찾듯 올라가는데 그 밤에 어디선가 쟈스민 향기가 온 도시를 덮는 듯 짙고 향기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나의 꽃향기 속에서도 연상되는 수많은 이미지와 어떤 도시 전체가 기억나는 일도 있다.
그 늦은밤 신전에 올라가 거대한 역사의 돌기둥에 등을 대고 앉아 휭하니 뚫린 천장 위를 바라본다. 하늘에서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터키가 그리스를 침공하고 그리스인들을 죽이기 위해 폭탄을 파르테논 신전 속에 감추어 둔 것을 그리스인들이 알고 그것을 폭파시켜 신전의 천장이 날아간 것이다. 신전 꼭대기에 앉아 아테네 도시를 보니 멀리 검은 비단처럼 펼쳐진 바다의 침묵. 그것은 닫혀진 세계에서 새벽을 향해 세계의 항해를 기다리는 깊고 거대한 힘의 침묵이었다. 늦은밤 신전에서 느끼는 바람 그리고 저 핏속부터 느끼는 고요하지만 서글픔을 담은 행복. 폐허의 숨결. 역사의 냄새. 그리고 폐허가 주는 또다른 깊고 독특한 허무의 美----. 헌데 이런 순간 나는 아무도 생각나지 않으며 오로지 역사와 세계와 나와의 합일만을 느낄 뿐이다.
다음날 델포이 신전을 다녀와 피곤하지만 밤이 되어 쟈스민 향기 가득한 신전을 향해 올라가는데 정말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골목길들은 온통 주황색초 로 밝혀 있었다. 그리스정교 부활예배는 한밤중에 모든 교인들이 성당 밖에서 주황색 긴 촛불을 들고 예배를 본다. 신부님이 한구절 낭송하면 모든 교인들이 화답하는 이 아름다운 音들이 합창이 되어 울려퍼진다. 나의 친구와 나에게도 긴 초에 불을 붙여 건네주는 따스한 손길이 있었다. 이천년 전 부활을 지켜보았던 그 시대인들의 마음이 되어 성스러움이 온 도시를 채운다. 부활은 오직 한번이듯이 내 일생 중 오로지 한번의 부활의 체험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의 부활이었다. 이렇게 저 산 위에 커다란 주택의 기둥은 나를 아테네로 이끌어준다. ---
나는 가끔 LA를 가면 꼭 폴 게티 뮤지움엘 간다. 그곳엘 가면 미술품뿐 아니라 산꼭대기 위에서 LA와 산타모니카의 모든 전경을 보며 특히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입장을 시킨다. 이렇게 일반인들이 대중을 위해 꿈꾸지 못하는 일을 왕권이 아닌 이 시대에는 부자들이 이루어낸다. 부자들이 거침없이 펼치는 일들을 오직 화려한 사치라고 너무 탓하지 말자. 왕관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을 쓰는 자보다 왕관의 시간은 훨씬 길다. 왕관의 화려함과 우아함은 우리에게 꿈과 동화와 꿈들을 선사한다.
피렌체에 메디치가 사람들이 예술에 바친 힘은 너무도 크고 위대하다. 예술가와 그리스 학자들을 머물게 하며 아침식사는 모두가 모여 학문과 예술에 대해 담소한다. 미켈란젤로도 13세 때부터 그 집에 들어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많은 공부를 했다. 그들은 모든 예술품을 市에 기증하며 미술품이 절대 피렌체를 떠나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세계 모든 사람들이 예술품을 보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하루 2,000대의 관광버스가 우피치 뮤지움에 관광객을 쏟아낸다. 메디치가 덕에 시 전체가 먹고살고 있다.
이렇게 미적감각이 있는 부자들이 늘고 새해에도 돈을 멋지게 썼으면 좋겠다. 2차대전 때 미술품을 훔쳐가는 독일인에게 불란서인들은 목숨걸고 지키려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예술품은 국가의 영광이기에 지켜야 한다고 하던 불란서의 평범한 소시민들---또 이것을 훔쳐가며 美란 그것을 찬미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우기던 독일인들---과연 美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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