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only freedom isthe freedom from the known.
오로지 유일한 자유는아는 것들로부터의 자유일 뿐이다.
==========================
어느 화창한 겨울 오후, 뜻있는 점심 자리에서입니다.
덕담들이 오간 후, 한 분이 넌지시 물어옵니다. "종교적 다원주의자 아니세요?" 따짐이 아닌 진심의 질문입니다. 뭔가 진솔한 답을 드려야 할텐데 …… "글쎄요, 종교 이전의 진리를 조용히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자, "선(禪)이군요.”라고 정리해주십니다.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딱히 ‘선(禪)’만이 답은아닙니다. ‘선(禪)’ 또한 방편이지요. 많은 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종교적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란 여러 종교들이 저마다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뜻하기도 합니다. Many paths, one summit!" 길은 많아도 정상은 하나. 두루뭉술해도 대략 그렇게들 이해하는 게 바로 ‘religious pluralism’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단호하게 거기에 속하지 못함을 답해드렸어야 했는데 ......
점심(點心)을 마칠 무렵, 크리슈나무르티의 ‘일갈’이 정수리를 관통합니다. 아, 그렇지. 홀연, 아득해집니다.
The only freedom is the freedom from the known.
자유란, 오직 아는 것들로부터의 자유일 뿐! 뭔가 안다는 생각이 터럭만큼이라도 있다면, 즉시 자유는 불가능하다. ‘앎’이 곧 그대를 옭아맬 것이기 때문이다. 안다니? 도대체 뭘 안다는 말인가? 그대가 안다는 그것, 바로그것 때문에 그대는 그토록 자유를 그리워 하는 게아닌가? The only freedom is the freedom from the known!
===============================
To understand the immeasurable,the mind must be extraordinarily quiet, still.
잴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면,마음이 지극히 조용하고 고요해야 한다.
===============================
진리는 잴 수 없습니다. 깨달음은 말을 세우지 않는불립문자(不立文字)입니다. 성부/성자/성령을 생각으로 가늠할 수 없습니다. 처녀의 몸 속에 잉태되어 세상에 나오신 예수님의 신비를 사람의 마음으로 알아채기란 불가능합니다. 질문하는 그 마음으로 어떻게 ‘마음 밖’의답을 가늠하리오? 재고 따지는 마음 너머로, 그렇게 지극히 조용하고 고요한 상태라야, 답은 “슬며시”떠오릅니다. 질문이 저절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늘 있었던 답인데 시끄러워 몰랐을 뿐입니다. 그리고, 알고 나면 ...... 사실 무엇을 따로 알게 된 것이 없습니다. 무덤덤하고 또한 덤덤합니다. 그게 바로, ‘잴 수 없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린 후의 느낌입니다. 지두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는 어릴 적부터 주위 사람들이 ‘세계의 교사’로 만들려는 집요한 노력을 물리치고, 스스로 체험한 진리의 경계를 홀로 꼿꼿하게 전하다 가신 분입니다. 여럿이 모여 누군가를 숭배하고기복을 빌며 공덕쌓기에 급급한 무리들과는 철저하게담을 쌓고 살다 가신 분입니다. ‘지극한 고요함’ 속에 철저히 자유로웠던 실존이 바로 지두[Jiddu]였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고 이른바 ‘공생활’을시작하기 전, 광야에 나아가 40일을 보내십니다. 부처님또한 6년 고행 끝에 마지막 명상에 들어 동녘의 샛별을보는 찰나 ‘깨달음’을 얻습니다. 두분 모두 ‘지극히 고요한’가운데 ‘잴 수 없는 그 무엇’을 선명하게 아십니다. “Be still,and know that I AM God.”그렇게 아신 것, 그걸 인류에게 전하시느라 평생을 바치신 두분을 우리는 성인(聖人)이라 우러르며 삽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러르기에 바빠 ‘따라하기’엔 게으르다는 겁니다. 예수님 가라사대,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더 잘 할 수도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셨고 [요한 14:12], 부처님 또한 오로지 진리와 자신만을 등불로 삼으라 명하신 바 있습니다.
===========================
Look within. You are the world.
안을 들여다 보라. 그대가 바로 세상이다.
===========================
이게 바로 지두[Jiddu] 어른께서 짧게 자르며 전하는 진리의 요약입니다. 이토록 자명한 진리를 알기 위해 신학자나 비교종교학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종교 저 종교를 넘나드는 ‘종교적 다원주의자’가 될 필요 또한 없습니다. 무리지어 모여 섬기는 ‘종교’ 너머의 자명한 진리를 찾으면 될 뿐! 그래서, 자유로워지면 될 일! 지두 선생 말씀대로, 자유란 나중에 얻어지는 게 아니라 맨 처음부터 있어 온 것입니다. 자유롭지 못해 괴롭다는 제자에게 "누가 그대를 묶어 놓았는가?"라는 선사(禪師)의 질문이 너무도 감격스러운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웃 종교를 이해하고 서로의 방식을 공유하는 건 지당한 일입니다. 다원주의(多元主義, pluralism)란 이해의 방식이지 지식의 확장은 아닐 터입니다. 붓다/예수와 더불어 흔히 4대 성인 중 한분이신 소크라테스가 늘 당부하시던 말씀,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 그게 바로 답입니다. ‘종교적 다원주의’란 뱀다리[蛇足]일 뿐입니다.
OM~
--------------------------------------------------------------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FTS 폴더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