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봉의 글씨 고적의 시 제야작(除夜作)
여관의 찬 등불은 홀로 잠이 안 들었는데 (旅館寒燈獨不眠: 여관한등독불면)나그네 심정은 어찌 이리 처량하게 떠도는지 (客心何事轉凄然: 객심하사전처연)이 밤 고향 식구들은 천리 밖 나를 생각하리 (故鄕今夜思千里: 고향금야사천리)귀밑 내 허연 털은 내일이면 또 한 살을 먹겠구나. (霜鬂明朝又一年: 상빈명조우일년)
위 시의 저자 고적(高適: 702-765)은 당(唐) 나라 때 사람이다. 큰 키 딱 벌어진 체격에 성격 또한 호탕하고 칼 쓰기에 능해서 협객과들과 어울려 방탕한 한 시절을 보냈다는데 뒤늦게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해서 과거에 급제를 하고 벼슬길로 나섰다
처음 벼슬길에 나선 고적은 눈에 뵈는 것이 없을 정도로 자신이 넘첬다. 글 잘하고 무예 또한 뛰어났으니 나만한 인재가 세상 어디에 또 어디 있겠냐 싶었을 것이다. 그 때 쓴 시가 전가춘망(田家春望). “문을 나서 밖을 보니 볼 만한 것 하나 없어/그저 넓은 들판에 풀이 가득 차 있을 뿐/ 탄식하리로다, 나를 알아주는 이 없다니/고양의 한 술꾼이 바로 나로다”
여기 끝 구절 “고양의 한 술꾼(高陽一酒徒)”는 역이기(酈食其 )라는 책사( 策士)가 漢 왕 유방에게 자신을 외친 말이다. 역이기가 당시 항우와 천하를 두고 다투고 있던 한 왕에게 면회를 신청하니 시종이 나와서 “왕께서는 선비들과는 만나지 않으신다”고 딱지를 놓았다. 원래 학문에 취미가 없는 유방은 머리에 먹물깨나 들었다는 선비들이 잘난 체 하는 것이 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이기는 옆에 찬칼을 움켜쥐며 “나는 고양(高陽)에서 온 술꾼이지 ‘논어’나 읽는 유생이 아니다”고 고함을 질러 유방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한왕 유방의 신임을 받아 참모로 중용되었다. 훗날 그는 군사 한 명 없이 두 치의 혀로 齊나라를 항복시킴으로 유방의 한(漢)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첫 단추를 꿰게 된다.
이처럼 기상이 드높았던 고적이지만 누가 알아줘야 출세를 할 것 아닌가? 돈 없고 “빽”이 없는 하급 벼슬아치는 마냥 한직으로만 맴 돌 뿐이었다. 그나마도 환관 고력사의 미움을 받아 쫓겨 간 곳이 현재 티베트 지역에 있던 토번(吐蕃). 거기서 그는 반란군을 진압하던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 가서한(哥舒翰) 장군의 밑에서 서기로 종군하였다.
시인이 말년을 보낸 곳도 역시 고향에서 먼 변방 땅인 발해였다. 거기에서 시인은 안록산의 난(755-763)을 겪으면서 집을 떠나 외로운 땅에서 싸우는 장병들의 고통과 남편을 멀리 전장에 보낸 고향집 젊은 아내의 끓는 애간장을 소재로 해서 시를 썼다. “머나먼 원정길 무거운 철갑옷에/고생이 오래되니/아내는 이별후/옥 같은 두줄이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으리/젊은 아내 남쪽 땅에서 그리워 애간장 다 끓고/군인간 남편은 계북 땅에서 부질없이 고향 땅 돌아본다..” 연가행(燕歌行)이라는 그의 시 한 구절이다.
평생 출세 한번 크게 못하고 변방 싸움터로 옮겨 다니며 고생만 했던 시인 고적. 그러나 고적은 그런 생활 가운데에서도 주옥같은 시를 써서 변경 요새(要塞)에서 외롭게 싸우는 병사들의 시름을 달래고 고향에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였다. 변방 요새에서 쓴 시라고 해서 변새시(邊塞詩)라고 이름하는 그의 시는 66首나 전한다는데 우리에게 소개된 당시선(唐詩選)에는 몇 편 밖에 수록되지 않아서 아쉽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제야작의 마지막 구절 “霜鬂明朝又一年”을 생각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살아온 햇수만큼이나 주름진 얼굴이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한 해 나이를 더 먹는다는 자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의 대답 “글쎄, 늙어갈 수록 처세가 옹색해지고 생각이 편협해져서는 안 되겠지. 그보다 세상을 좀 더 폭 넓게 그리고 부드럽게 바라보는 여유를 갖는 것. 그것이 내가 찾는 의미야.” 내년에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항상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세상만사이다. 그러나 일이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거기에는 섭리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요즘에야 깨닫는다. 변방 수비대의 거친 생활이 고적의 詩語로 태어나듯 어떤 암담한 현실에서도 생의 의미는 항상 그 안에 있는 것이니까.
제야작은 시골에서 올라온 한 친척 형이 대학시절 옹색한 서울의 내 자취방에서 두어 달 ‘신세’를 지고 떠나면서 내 노트 뒷장에 써준 인데 시인의 심정- 아니, 글을 써준 그 형의 심정이 내 맘에 닿아서 아직까지 이 시를 외우고 있다. 나그네 인생길. 오늘도 제야는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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