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실수를 했다. 내가 사는 Rossmoor 에 육통권(六通拳)이라는 체조 프로그램이 있어서 우린 매일 아침에 모여 한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그날도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급하게 가고 있었는데 모이는 장소에 거의 다 가서 골프 카트가 하나가 길 가운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게다가 좁은 길이니 아내는 “조심, 조심”하고 운전을 하는 나에게 주의를 주었고, 나는 나대로 혹시 마주 오는 차가 있는지 주의하면서 골프 카트를 비켜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혹시 저 차가 고장이 나서 저렇게 서있나?” 싶었지만 솔직히 그건 잠시 스쳐가는 생각이였고 나는 내 갈 길이 바빠서 그냥 무심코 지나간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 알고보니 그 골프 카트의 주인공은 매일 아침 체조를 같이하는 김 교수였고, 그 날은 승용차가 고장이 나서 골프 카트를 타고 가는데 그것도 가는 도중 시동이 꺼져서 당황해 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사모님께서는 내 차가 오는 것을 알아 보고 순간 안심을 했었다는데 나는 자기들을 못보고 그냥 지나더란다. 나중에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는지…
40 여년 전, 그런니까 내가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서 였다. 스테이션 웨건에 이런 저런 잡화를 싣고 벼룩시장을 찾아 다니며 파는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미국 구경’도 할 겸 그 친구를 며칠 따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어디서 장사를 잘하고 다음 장소로 가는데 지름길로 간다는 것이 그만 방향을 잘 못들어서 산중에 길을 잃었다.
캄캄한 밤중에 한참을 헤메고 보니 배고픈 것은 둘째 치고라도 자동차 개스가 달랑 달랑 했다. “이거 큰일 났다” 싶었는데 저만치 무슨 집 같은 것이 보여 가서 보니 집은 집인데 전등불도 다 꺼져있어서 빈집인가 싶었지만 우선 문부터 두들겼다.
그 때가 밤 12시 쯤 되었나? 그러자 집안에 불이 켜지더니 한 영감님이 문을 비스듬이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자다 일어 났는지 속옷 차림이였다. 길을 잃었다고 사정 얘기를 하고, 여기서 가까운 Gas Station 이나 Freeway 가는 길만 좀 알려 달라고 했더니, 그 영감님이 대답도 안하고 문을 닫고 들어갔다. 우리는 실망을 하면서 돌아서려는 순간 뒷 뜰에서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후 그 영감님이 반트럭을 타고 나타났다. 말로 가르쳐 주어도 모를 것이니 자기를 따라 오라는 것이다. 그 영감님을 따라 산길을 한 이삼십 분을 족히 달리니까 Gas Station 이 있었고 그 옆에Freeway 입구가 나타났다.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동양 사람들이 나타나서 길을 물었는데 영감님은 자다가 일어나서 몇 십분을 운전해서 방향을 가르쳐 준 것이다.
몇 년 전이다. 한번은 205 Freeway 내리막 길에서 내가 깜박 졸아서 앞차를 들이 박았다. 받힌 차는 큰 Container트럭이였는데 그 차는 자기가 받혔는지도 모르고 그냥 가 버렸고, 나는 차 앞부분이 대파된 상태에서 정신이 절반 쯤 나가있었는데 마침 뒤에서 오던 차에서 누가 내려서 내가 다쳤는지 살피고 내 차를 밀어서 옆으로 대는 것을 도와 주고, 911으로 전화를 해서 경찰을 부르고, AAA 에 연락해서 토잉 서비스를 돕는 등, 그 밤중에 한동안 나를 도와주고는 떠났다. 너무 고마워서 전화 번호를 물었는데 그 사람은 손사레를 치면서 그냥 떠났다.
미국에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밤길 빗길에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난감한 상황에서 어떤 모르는 사람이 도와주었다 거나 복잡한 도시에서 첨 만난 사람에게 길을 물었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 친절하게 가르켜 주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던 경험들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미국 사람들의 몸에 배어있는 작은 친절이다. 내가 내 자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에서 몇 십년을 살았어도 이런 친절을 베푸는데 매우 서툴다는 것이다. 그날 아침에도 길에 서있는 골프 카트를 보았으면 당연히 가던 길을 멈추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어야 했다. 작은 친절을 베푸는 그런 문화적인 기초가 내 의식구조에 없으니까 고장난 차가 보여도 무심하게 지나친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은 참으로 정이 많고 이웃에 도움을 주는 것에도 전혀 인색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문화는 아는 사람, 나와 연관된 사람에게는 ‘과도할 만큼’ 친절하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렇듯 무관심하다. 그보다 모르는 사람을 돕는 그런 훈련이 안되어 있는 것이다.
언론으로 비추어지는 요즘의 미국 사회는 얼핏 보기에 비관적인 모습 뿐이다. 크고 작은 범죄, 마약, 총기 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 사회를 진단하는 데 있어서는 벨라(Robert Bellah) 교수와 견해를 같이한다. 종교 사회학의 벨라교수는 그의 저서 Habits of the Heart 에서 미국의 두 기둥, 즉 “앵글로 색슨의 청교도 정신과 개인주의”가 미국을 떠 받히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청교도 정신이란 근면 검소 친절의 생활 방식이며, 개인주의란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정신을 말한다. 이러한 정신 문화가 일반 시민들의 생활속에 ‘작은 친절, 작은 선행’ 이라는 습관을 심어주고 이러한 작은 것들이 모아져서 위대한 미국, 강력한 미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항상 이맘 때가 되면 크고 작은 자선활동을 하는 바쁜 손길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본다. 미국은 아직 건전하고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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