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의 그 서커스 소녀가 지금도 내 눈에 밟힌다. 그 날 내가 다니는 소(초등)학교가 있는 읍내 공터에서는 서커스 천막이 한참 처져 가고 있었다.
한편 읍내 마을을 가로 지르는 신작로에는 서커스단 악사들의 거리선전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악대 맨 앞쪽에는 포스터 간판을 짊어진 좀 바보스런 지게꾼이, 그 바로 뒤에는 서커스의 노래를 구성지게 내뽑는 트럼펫 악사가, 그뒤에는 또 다른 악사들이 따르고 맨 뒤쪽에는 큰 북을 가슴에 안은 북치기가 따르고 있었다. 한편 악사들 뒤에는 헐떡거리는 검정 고무신을 벗어 두손에 쥔 머스마와 귓땅머리 검정 통치마의 가스나, 그리고 코 흘리게 아이들이 그저 신바람이 나서 졸졸 따라 가고 있었다. 나도 그 행렬 뒤를 좀 따라 다니다가 그만 두고 30리 길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노을이 서산에 뉘웃뉘웃 기울고 있는 저녁 무렵이 었다. 그날 밤 첫 공연의 막이 열리기 전에 가설로 끌어 온 전기불이 환하게 밝혀진 매표소 옆에서는 낮의 그 악사들이 서커스의 노래를 크게 내뿜으며 손님을 천막 안으로 빨아 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표 살돈이 없었던 우리 반 친구 ‘덕만’이는 천막 한쪽의 재법 구멍이 넓은 틈새로 몰래 들어 가려다 경비원에게 들켜 끌려 나와 엉덩이를 호되게 채이고는 머슥하게 물러나고 말았고, 또 다른 내 친구 하나도 어떤 아주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입장 하려다 친아들이 아닌게 들통 나 머리에 구멍이 날 만큼 호되게 꿀밤을 얻어 먹고 쫓겨 났다는 사실을 그 다음 날 학교에서 털어 놓기도 했다.
공연 두번째 날 우리 어업조합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 등 30여명은 아버지의 인솔 아래 단체로 그 서커스 구경에 나섰다. 천막 안으로 들어 서자 땅바닥에 짚 돗자리를 깔아 놓은게 관람석이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 되었다. 그런데 시골로 돌아 다니는 곡마단이기 때문에 그런지 곡마단이란 이름대로 말이 곡예를 부려야 할텐데 말이 보이지 않았고, 물론 경성(지금의 서울)이나 부산에서의 곡마단처럼 코끼리도 호랑이도 없었다. 공연 프로라야 내가 어릴 적에 가 본 절간의 대웅전 기둥 만큼 굵은 무다리 아가씨가 책상 위에 드러 누워 두 다리로 큰 나무통 돌리기와 자전거 바퀴 네배 크기의 굴렁쇠 돌리기에다 하얀 운동복을 입은 남자 셋이 나와 차례로 어깨 위에 올라서서 한바퀴 뺑 도는 아찔한 장면들이었다. 게다가 빨간코에다 고깔모자를 눌러 쓴 삐에로(어릿광대)의 익살스런 ‘원맨쇼’가 손님들을 웃겼다. 그리고는 맛 배기로 약 30분 가량의 촌극(寸劇)이 펼쳐지기도 했지만 어린 내 눈에도 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날 밤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공중 그네타기였다.
천막 안에 미리 세워진 우리 학교 운동장 한켠에 서 있는, 키다리 ‘포프라’ 나무 높이의 높은 발판 이쪽 저쪽에 올라간 젊은 남자와 여자 몇 명의 공중 그네타기를 객석 손님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 무용복 같은 짤막한 치마를 입은 내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아이가 줄 사닥다리를 타고 그 높은 발판 위로 기어 올라가자 손님들은 저렇게 어린 것이 어떻게 저 높은 곳에서 그네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염려에서 가슴을 졸이기 시작 했다. 그런데 발판 꼭대기까지 올라 간 서커스 소녀는 저쪽에서 밀려 온 그네로 향해 개구리 같이 홀딱 뛰어 잡고 늘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관중석에서 ‘악’하고 놀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놀라움의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그러자 내 옆에 앉아 있던 우리 어업조합 윤서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들기면서 “웅(내 본명‘정웅’이의 애칭)아, 걱정 마! 저건 일부러 떨어진거야!” 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는 나는 눈에서 손을 떼고 떨어진 그 서커스 소녀를 바라 보았다. 그때 아래쪽 보호망(그물)에 떨어졌던 소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발판 위에 올라 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물찬 제비가 하늘을 날아 다니듯, 멋지게 그네타기를 시작 했다. 그러자 관중석에서는 우뢰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날 밤 나는 그 서커스 소녀의 그네 타는 꿈을 꾼 것 같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변득스런 여름 날씨 탓에 공연 넷째 날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일주일 예정의 공연 끝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원거리(遠距離) 손님들이, 비를 맞아 가며 구경 올 턱이 없었다. 손님을 끌기 위해 그렇게 서커스의 노래를 불러 재끼던 나팔 소리도 딱 멎었고 빗줄기만 가설의 전등 불빛에 반사 되어 반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천막 틈으로 기어 들어 가려던 ‘덕만’이와 어떤 아주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들어 가려던 또 다른 내 친구는 비 덕택으로 꽁짜 구경을 할 수 있었지만, 일주일의 공연 날짜를 힘겹게 메꾼 서커스단은 천막을 걷고 어디론가 떠나 갔다.
그런데 서커스단이 천막을 걷고 떠나간 뒤에 들려온 뒷 소문이 단원들의 여관비와 밥 값을 갚지 못해 그 서커스 소녀가 그 여관의 어린 식모로 잡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소문이 정말일까 알아 보기 위해, 그 여관을 찾아가 볼까 하고 여러차례 마음 먹었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슬퍼질 것 같아 끝내 그 쪽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내가 중학3학년이던 해에 해방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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