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was a child, I used to talk as a child, think as a child, reason as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aside childish things.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는 오강남 교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가볍게 심오한 YouTube 영상, 30분 조금 넘는 내용입니다. 노장사상에서 도마복음까지 그 속내를 환하게 아는 사람 오강남. 평생 비교종교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캐나다 대학에서 가르친 점잖은 학자 오강남의 얘기가 잔잔한 공명을 불러일으킵니다. 목에 핏대올리며 혼신의 열강으로 대중을 어루만지는 또 다른 어떤 분과는 매우 대조적인데, 결국 두 분의 관심이 모아지는 그 곳에는 늘 같은 답이 나온다는 진실에 감사할 뿐입니다.
오늘 듣는 오강남의 설교[?]는 대한민국 어느 안식교회에서 펼쳐집니다. 진리는 간단하고 자명하기에, 진리를 몸소 깨닫고 전하는 메신저의 메시지 또한 간단하고 자명합니다. 오늘 얘기의 제목을 굳이 붙이자면 "표층종교와 심층종교," 그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를 수평적으로 구분하자면, 기독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 등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같은 종교라도 수직적으로 나누면 모든 종교에는 ‘표층’과 ‘심층’이 고루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오늘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영리한 스승은 시작하는 말씀, 들어가는 인트로[Intro]에 또렷한 방점을 찍습니다. 조용히 말하는 현자 오강남 또한 예외가 아닙니다. 얘기하는 곳이 기독교 교회인지라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전서 13장, 그 유명한 ‘사랑’ 장으로 말문을 엽니다. 하지만, 사랑은 어떠하고 어떠하며 ..... 하는 그 부분은 슬쩍 지나고, 진짜 중요한 오늘의 지문[13:11]을 천천히 읽은 후, 어린이다운 순진함[childlike]과 애같은 유치함[childish]을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When I was a child, I used to talk as a child, think as a child, reason as a 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aside childish things.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생각하고 아이처럼 헤아렸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 적의 것들을 그만두었습니다.
애같은 유치한 수준의 신앙이 ‘표층종교’라면, 지천명 어른의 무르익은 신앙은 ‘심층종교’라 할 수 있다고 가르면서, 무릇 모든 종교에는 이 두가지 측면이 고루 존재한다고 하십니다. 예컨대, 불교나 기독교나 ‘세속의 이익’을 위해 빌고 바라는 ‘제나’의 신앙은 모두 종교의 표층[surface, 곁표면]에 매달리는 유치한 수준입니다. 반면에, ‘얼나’의 참된 깨달음에 근거한 깊은 신앙은 종교의 심층[depth, 깊이], 그 속내를 꿰뚫는 신앙이라 말합니다.
거짓나/몸나/제나의 표층신앙이 참나/얼나의 심층신앙으로 성숙하려면 진정한 ‘회개’[Metanoia]가 있어야합니다. ‘회개’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뜻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회개하라!"고 하실 때 그 회개의 참 뜻은 "바로 보라!" "인식을 바꾸라!" "회심하라!"는 뜻입니다. 회심(悔心)의 참뜻은 회심(回心)입니다. 깨달아 마음을 돌려야 진정한 신앙인이 됩니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서간에서 말하는 ‘아이 적의 것들’은 곧 회심하기 전의 유치한 신앙을 말합니다. 오강남 교수의 산타클로스 얘기가 참으로 적절합니다. 아이 적 산타클로스는 진짜입니다. 그래서 말도 잘 듣고 성탄절이 되어 사슴썰매를 타고 와서 굴뚝 밑으로 선물을 전하는 산타클로스를 굳게 믿고 기다립니다. 물론,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유치하지만 나름대로 신앙입니다.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산타클로스 얘기는 그저 소설같은 얘기란 걸 알게 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들을 위해 스스로 산타클로스가 됩니다. 나아가, 산타클로스 정신의 참뜻을 살려 세상살이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노력한다면 이제 유치한 신앙이 원숙한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맹목적이 아니라 깨달음을 바탕으로 성숙해갑니다. 산 위를 오르면서 점점 시야가 넓어지듯이, 식견이 성숙하면서 믿음 또한 자랍니다. 멈춘 자전거는 쓰러지기 쉽지만 계속해서 달리는 자전거는 좀체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비유를 때맞춰 전하는 오강남 교수. 모든 종교의 심층은 결국 ‘하나’임을 강조하며 우리나라의 동학(東學)이 가르치는 시천주(侍天主), 즉 ‘내 안의 한울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심층종교의 핵심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남을 나처럼 즉 한울님처럼 여기고 섬기는 천도교의 ‘사인여천(事人如天)’ 또한 모든 종교의 심층을 관통하는 진리라 전합니다. 종교의 심층에 자리한 진리는, 표층종교가 어떤 이름의 옷을 입던 늘 같습니다. 이렇게, 수운 최제우, 다석 유영모 어른같은 선현들의 지혜전통을 잇는 분들이 계속 우리 땅에 나고 계시다는 건 참으로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교 너머의 ‘아하![Aha!]’ --- 그게 바로 심층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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