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트문트’요 영화는 프레드 진네만이 감독한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ㆍ1953)이다. 난 지금도 나를 골트문트요 대학 때 만난 내 친구 C를 나르치스로 여기고 있다.
내가 영화비평가가 된 원인은 ‘지상에서 영원으로’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내가 보면서 눈물을 흘린 첫 영화로 어릴 때 영화를 보면서 받은 감동 때문에 결국 나는 지금도 영화 인생을 살고 있다.
제임스 존스가 자신의 오아후에서의 군 생활을 바탕으로 1951년에 쓴 800여쪽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는 진주만 피습 직전의 하와이 주둔 G중대 소속 3명의 군인과 그들의 여인을 중심으로 엮어지는 억세게 강인하고 강렬한 드라마다.
이 3명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군인이 고집불통 일등병 프루윗(몬고메리 클리프트)이다. 프루(프루윗의 약칭)는 군을 사랑하면서도 개성을 용납지 않는 이 조직사회에 저항하다가 끝내 희생당하고 만다. 뒤늦게 군에 징집돼 “영감” 소리를 들어가면서 고생을 한 나는 프루의 저항정신을 큰 위로로 삼으며 견디어냈었다.
프루의 친구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졸병 마지오(프랭크 시내트라-오스카 조연상 수상)는 재잘대는 서푼짜리 사기꾼. 그런데 마지오도 프루처럼 고집불통이어서 자기가 미워하는 군 영창장 ‘팻초’ 젓슨(어네스트 보그나인)에게 박박 대어들다가 매 맞아 죽는다.
이들 못지않게 황소고집인 사람이 주임상사 워든(버트 랭카스터). 그는 자기 애인인 중대장의 부인 캐런(데보라 카)의 장교가 돼 같이 살자는 간청을 끝내 거절한다. 겁 많고 소심한 나는 어릴 때 이들의 고집에 압도적인 경외감을 느끼면서 그들의 사나이다움을 크게 부러워했었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프루의 몸에서 발산되는 고독감 때문이다. 세상의 고독은 혼자서 다 짊어지고 다니는 듯한 몬티(몬고메리의 약칭)의 부단히 움직이는 눈동자와 꿈꾸는 듯한 얼굴을 보면서 어릴 때 외톨이었던 나는 그를 가슴 깊이 받아들였었다.
그런데 존스는 소설에서 F자 상소리와 노골적인 게이섹스를 묘사해 막상 출판사가 책을 낼 때는 이것들을 모두 잘라내 버렸다. 내가 읽은 책도 이렇게 다소 정화된 판인데 이 잘라져 나간 글들이 얼마 전 디지털 책에서 복원됐다.
영화는 군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가차 없이 고발한 소설의 분위기와 여러 내용을 미화시켜 존스는 영화를 싫어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프루의 애인 로린(도나 리드-오스카 조연상 수상)은 클럽 호스티스로 나오나 소설에선 창녀이고 마지오는 소설에서 게이섹스로 용돈을 번다.
작품 및 감독상 등 모두 8개의 오스카상을 탄 영화에서 당시만 해도 보수적인 미국사람들을 화들짝하니 놀라게 만든 것이 워든과 캐런의 해변 키스신. 빙하와도 같은 차가운 외모 속에 타오르는 욕정을 지닌 숏커트의 데보라 카와 늠름한 체격의 버트 랭카스터가 수영복 차림으로 달밤 와이키키 해변에서 달려드는 파도를 온몸에 입으면서 뜨거운 키스를 하는 러브신은 감관을 아찔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것이다.
그런데 ‘지상에서 영원으로’가 뮤지컬로(사진) 만들어져 현재 런던의 웨스트엔드의 샤프츠베리 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나는 얼마 전에 이 뉴스를 읽으면서 ‘아니올시다’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냈었다.
터프한 내용을 어떻게 뮤지컬로 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프루와 워든과 마지오가 노래하는 모습을 생각하자니 터무니가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러브스토리 ‘짧은 만남’의 반 연극 반 뮤지컬 형태의 무대극을 브로드웨이에서 보고 느꼈던 큰 실망감이 되살아났다.
뮤지컬의 대사는 ‘에비타’와 ‘라이언 킹’과 ‘미녀와 야수’의 대사를 쓴 베테런 팀 라이스가 썼고 작곡은 무명씨나 다름없는 스튜어트 브레이슨이 했다. 보도에 따르면 존스의 딸 케일리는 처음에 아버지의 소설을 뮤지컬로 만드는 것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었다고. 그런데 브레이슨의 노래를 듣고 좋아한데다가 런던서 뉴욕에까지 날아와 자신의 뜻을 설명하는 라이스가 마음에 들어 뮤지컬에 동의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뮤지컬에 대한 언론의 평이 시큰둥하다. 버라이어티는 “음악과 가사와 대본이 책의 긴장감을 살리기엔 너무 빈약하다”고 평했다. 또 가디언은 “뒤늦게 40년대 군 얘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며 음악이 책의 내용에 무엇을 더해 줄 수가 있을 것인지를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지상에서 영원으로’는 뮤지컬 보다 오페라가 더 어울릴 작품으로 런던의 뮤지컬이 과연 브로드웨이에 상륙할 수 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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