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로마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관심을 갖은 것은 러셀 크로우가 주연한 영화 검투사(Gladiator) 때문이다. 초반을 압도하는 게르마니아 전투 장면, 그리고 로마군 장군이였으나 가족은 비참한 죽음을 당한채 본인은 검투사로 전락한 장군 막시무스의 비극적인 삶, 현란한 검투, 등 아주 재미있게 본 영화중 하나이다. 실제로 영화 검투사는 스토리 전개만 픽션일 뿐 거기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실존인물이다.
나는 지난 번 칼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준비할 때 영화’ 검투사’를 기억하면서 몇가지를 메모하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16대 황제로 5현제 (五賢帝) 중에 마지막 황제이다. 플라톤의 철인(哲人)정치 이상을 자신의 국가 경영에 실천해려 했던 최초의 황제였다. 스토아(Stoicism) 철학의 최고의 저서라고 일컷어지는 명상록를 게르마니아 전투 현장에서 썼는데 그것도 자기 모국어인 라틴어로 쓰지 않고 헬라어(그리스어)로 썼다. 스토아 철학자로서 황제는 평생을 근면 검소하고 금욕된 생활을 실천하였으며, 아내 이외 어느 여자와도 가깝게 하지 않았다. 아주 모범적인 남편이였다.
오현제 중 앞의 네 황제는 주변에서 가장 능력있고 덕이 있는 사람을 양자로 삼아서 제위를 물려 주었는데 이 아우렐리우스 황제 만큼은 외아들인 콤모두스에게 제위를 물려 주었다. 사실상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오현제 중 앞 네 황제는 아들이 없었지만 아우렐리우스 황제 만큼은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결혼 생활 23년 동안 자녀를 14명 낳았다. 그중 생존한 자녀는 다섯인데 넷은 딸이고 아들은 콤모두스 하나 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황제가 전쟁터에서 탁월한 지도력과 용맹을 떨치던 막시무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했고, 자기가 황제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황제의 아들인 콤모도스는 아버지인 황제를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건 픽션이고, 사실은 처음부터 황제는 아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준비했다.
황제는 콤모두스가 11살부터 게르마니아 전선에 데리고 와서 전투를 경험하게 하였고 15살때 집정관이 되도록 하였으며16살 때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공동황제로 지명함으로 유사시에 아들이 자동적으로 황제가 되도록 하였다. 따라서 병약했던 황제가 게르마니아 전선에서 병사한 다음 18세의 콤모두스는 자연스럽게 황제위를 이었다.
영화 주인공 막시무스 역시 실존인물로 황제를 모시고 게르만 전선에서 싸워 이기는 로마군 사령관으로 나왔지만 실제로 전투 당시에는 연대장 급 정도인 기병대장이였다. 이름은 발레리우스 막시미아누스. 영화에서는 발음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 그냥 막시무스라고 한 모양이다. 실제로 막시미아누스는 179년의 게르마니아 전투에서 기병대로 우회전하여 배후를 공격함으로 적을 괴멸시켰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적장과 일대일로 맞붙어서 한 칼에 쓰러뜨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막시무스는 콤모도스가 황제로 즉위한 이듬해에 군단을 지휘하는 장군이 되었고 콤모도스 황제와 함께 로마로 개선한 다음 186년 집정관까지 지냈다.
영화에서 막시무스의 옛 애인으로 나왔던 황제의 딸 루킬라 역시 실존인물로 콤모두스 보다 11살 위 였다. 누나는 동생 콤모두스가 황제 위에 오른 다음 뭔가 삐친 심정으로 원로원 의원 몇과 공모하여 콤모두스를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본인은 피살되었다.
아울렐리우스 황제와 콤모두스는 배우로 출연한 것이 아니지만 본인들 의사와는 상관없이 영화에 두 번 출연했다. Anthony Man 이 감독했던 1964년 영화 <로마 제국의 멸망: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와 영화 ‘검투사’. 두 영화 다 콤모두스는 영화 주인공과 결투를 하다가 죽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사실은 콤모두스 황제는 자기의 최측근 시종으로 부터 암살 당했다. 온종일 사냥을 갔다와서 피곤한 콤모두스에게 시녀가 독이 든 포도주를 주었고 이를 마신 콤모두스가 정신을 잃자 레슬링 코치가 목을 졸라 죽였다고 역사는 전한다.
콤모두스는 자신을 헤라클레스의 현신이라고 자칭할 정도로 힘도 좋고 무술 실력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콤모도스는 창 100개를 가지고 투창으로 사자 100 마리를 한 마리 씩 모두 죽였다는데 한번도 창이 빗나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검투사가 되어 경기장에 나간 횟수가 735회. 당시 최고의 검투사를 진검 승부로 굴복시켰다니까 아마 영화에서 처럼 영화 주인공이 콤모두스를 이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콤모두스 황제가 암살된 후 다섯 달 동안에 네명의 황제가 등장할 정도로 로마는 혼란스러웠고 권력에 눈이 먼 정치가와 군인들 때문에 내전(內戰)이 끊이지 않았다.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의 쇠망사>에서 지적한 대로 로마는 콤모두스 황제로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멸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외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분열로 망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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