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것은 강물 만이 아니듯이, 세월도 강물처럼 흘러 이 해도 벌써 가을의 끝자락! 나는 이 해의 해그럼에 서서, 내가 뱃질 해 온 내 삶의 해로(海路)의 그 물결과 나울 소리를 다시 한번 떠올려 본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생(삶)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내 나름의 욕망의 바다를 헤쳐 왔다고 생각 하고 있다. 그 욕망의 바다는 글(文學)의 바다, 연극의 바다라고 해도 좋다. 그 바다를 내가 키를 잡은 내 배의 선미(船尾)의 ‘스크류’가 휘감아 내려 쏟아낸 하얀 거품의 물줄기는 레드 카펫(Red Carpet)과 같은 내가 밟았던 화이트 카펫이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뱃전에 부셔지는 파도 소리는 어쩌면 내 연극 무대를 향한 관객의 박수 소리 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떨 때는 거센 삼각파도에 휩싸여 난파할 뻔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던진 그물이 뜻하지 않은 암초에 걸려 그물이 찍혀 그물 가득히 담긴 고기떼가 바다 속에 쏟아 버려졌던 때의 아픔도 맛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물 가득히 담긴 고기떼를 갑판에 쏟아 붓고는 만선의 깃발을 꽂고 항구로 귀항하던 그 한 때가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내가 그욕망의 바다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헤밍웨이’의 소설 ‘바다와 노인’에 나오는 늙은 어부가 오랜 세월 그가 고기잡이 했던 그 바다의 정취를 잊지 못해 ‘큐바’ 해협을 떠나지 못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큐바의 늙은 어부와는 달리 그 (조국)바다에서 그물을 걷어 올리고는, 먼 바닷길을 배질 해 미국이란 조류가 다른 그 연안바다에 닻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이 바다에다 글이란 그물과 연극이란 그물을 던져, 두고 온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글과 연극으로 미국 풍토에 쉽게 뿌리 내리지 못하는 외로운 민들레 같은 이민 1세대들에게 위로를 안겨 주었으며, 이민 2세들에게는 연극(아동극)을 통하여 멀리 하기 쉬운 우리말을 효율적으로 익히게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욕망의 바다에의 그물질도 뜻하지 않은 ‘리만부라다즈’ 파동으로 인한 미국경제의 파탄과 내 몸의 뜻하지 않은 ‘디스크’ 발병에 따른 수술로 인한 거동 불편이란 악재가 겹쳐, 2004년 ‘콩쥐 팥쥐’의 통영 공연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9년 동안 연극의 막을 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연극의 ‘끼’를 잠재우지 못해 미국 경제 실정과 내 신체적인 조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또 다른 연극 바다에 그물을 던지기 위한 내 나름의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나이를 감안하지도 않고 앞으로 10년간 아동극과 성인극의 장기공연 계획을 세우고는, 우선 내년 3, 4월을 공연 목표로 한 성인극 공연 준비에 들어 갔다. 그리고는 상연 극본으로 나의 신작 희곡 ‘소쩍새’를 재쳐 두고 극단 ‘금문교’가 제2회 공연으로 막을 올려 크게 박수를 받았던, ‘폭소 춘향전’을 ‘대(大) 폭소 춘향전’이란 공연 제목을 붙여, 1막부터 웃음으로 시작하여, 웃음으로 5막의 막이 내려 가는 극본을 내 머리 속 원고지에 모두 담았다. 그리고는 실제 원고지에 옮겨 쓰려는 순간에 할멈에게 들키고 말았다.
원고지 겉장에 씌여진 연극 제목을 본 마누라의 입에서 찬비 같이 쏟아져 내린 말은 “뭐요? 대폭소 춘향전? 당신 지금 제정신이요? 연초부터 일곱달 동안이나 소년문학에 ‘은빛고기’ 연재 하느라, 그렇게 눈을 혹사했으면 그만 하지, 와 또 눈을 못 살게 굴라카요? 그리고 당신 말대로, 늙은 팽귄 뒷뚱걸음 같은 당신 걸음으로 연출은 또 어떻게 볼라꼬 이라요?” 였다. 나는 “흥, 늙은 심청이, 눈먼 주봉사 손목 끌고 다녀야 할까봐 걱정이 태산 같군!” 하고 얼버무렸지만, 마누라에게 정통으로 테클이 걸린 나는 마치 집 뒷모퉁이에 숨어서 군것질 하다가 들킨 애처럼 머슥해져서, 쓰던 원고지를 한쪽에 밀쳐 버리고는 긴 소파에 벌렁 드러 누웠다. 그리고는 손등을 이마에 얹고는 눈을 지긋이 감자 떠오르는 회상! 그건 내 젊어 한 때, 몇날 밤을 지세워 가며, 하룻 밤에 원고지 100장 쯤은 거뜬히 써 재꼈는데, 그리고 일년에 각기 다른 작품의 연극 공연 2번 쯤은 예사로이 치룰 만큼 패기 왕성 했던 내가 지금은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무너져 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눈물이 해픈 이 울보 영감의 눈에 나도 모르게 물기가 젖어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 두 눈에 고인 눈물의 수정체(水晶体)속에 떠오른 또 다른 현상은 내 어렸을 적에 사금팔이를 잘게 부셔서 마분지 대롱 속에 쏟아 넣고는 대롱을 뱅뱅 돌리면 유리조각들이 갖가지 모습의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되어 펼쳐지는 ‘프리즈마’ 현상처럼, 내 어릴적의 아름다웠던 동심의 한 장면이 펼쳐진다. 그건 그때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쯤으로 기억 된다. 그 때 내 학교 가는 길 옆 황토밭에 꽂아 놓은 나뭇가지 해시계의 그림자와 내 손목에 잉크펜으로 그려 놓은 손목시계를 번갈아 보고는 학교 시간이 늦었다고 내 한 반 밑인 구장(이장)딸 ‘순금이’의 손목을 꼬옥 잡고 학교로 넘어 가는 언덕길을 달려 갈 때, 돌산(石山)바위틈의 노송(老松)의 나무 가지에서 ‘뻐꾹 뻐꾹’ 하고 울던, 봄을 알리는 뻐꾹새의 그 울음 소리! 그 동심의 소리를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있을 때, 내 귀에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는 마누라의 염려의 소리가 아닌 내 마음의 의지의 소리가 나를 달래는 소리였다. “약해지지 마,무너지지 마! 네 가슴 샘에 아직까지 동심의 아름다운 색깔이 담겨 있기에 너는 그 아름다운 갖가지 색깔의 ‘크레용’으로 원고지란 화판에다 아름다운 글을 색칠하고 있는거야! 그러기에 너는 지금도 너의 욕망의 바다에다 그물을 던지고 있는 행복한 늙은 어부인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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