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121-180
김정수필자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국어 책에서 였다. 이양하 선생이 번역한 <페이터 산문>이라는 에세이 였는데 필자는 글의 내용은 어떻던 간에 글의 분위기가 어째 잿빛 하늘같이 무겁고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라면 당시 최고의 스토아 철학자였고, 로마 제국의 16대 황제이며 오현제(五賢帝: 제국의 역사상 가장 현명(賢明)했던 황제 다섯 명) 중 한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당시는 로마 제국이 라인강 이남의 전 유럽과 북 아프리카를 지배하고 있던 최전성기였다. 그런 황제 폐하께서 뭐가 부족하고 답답해서 이런식으로 글을 썼을까?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행복은 물질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네 육신과 영혼을 생각하라. 너의 육신이 차지하는 것은 만상(萬像) 가운데에 아주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 네 영혼이 차지하는 것은 이 세상에 충만한 마음의 다만 한조각일 뿐. 몸을 둘러보고 그것이 어떤 것이며 노령과 애욕과 병약 끝에 어떻게 되는 지를 생각해 보라.” 전투현장에서 쓴 명상록인데 전쟁 얘기는 한 구절도 없다. 그러나 生과 死가 엇갈리는 전쟁의 처절함을 체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들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최고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서 당대 최고의 스승들로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님은 어려서 돌아가셨고, 자신은 평생을 두고 병마와 고독과 번민 속에 살았다. 피우스 황제의 딸과 결혼함으로 뒤이어 황제의 위에는 올랐지만 아내 파우스티나의 불륜은 공공연한 비밀. 그렇지만 황제는 애써 모른 체 했다. 그대신 과중한 업무에 몰두하면서 철학적 사색의 세계로 자신을 던져 넣은 것이다.
아울렐리우스 황제 때의 로마제국은 팍스로마나(로마에 의한 세계 평화)가 막 저물기 시작한 암울한 시기였다. 특히 도나우강(江) 쪽에서는 게르만 계열인 마르코만니 족(族) 및 구아디 족(族)이 자주 침입하여 제국의 변경을 유린하였고 동쪽에는 파르티아가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황제의 첫째 임무는 제국의 안전을 유지하는 것. 따라서 병약한 몸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임 황제들처럼 몸소 야전군 사령관으로 전쟁터에 나섰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근 8년간을 다뉴브 전선에서 적과 싸웠다.
그러나 황제는 군인이라기 보다 철학자에 더 가까운 사람이였기 때문에 황제가 전장 한복판에서 부딛혔던 현실은 고되기만 한 것이었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사람들이 죽어갔다. 바로 아침까지도 황제가 등을 토닥거려 격려해 주었던 병사가, 지휘관 회의에 참석했던 장교가 저녁에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였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명상록에 짙게 드리운 우울한 분위기는 당시 이런 무거운 상황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철학적 사색을 서술할 때 가장 적합하다는 헬라語(그리스어)로 쓰여진 명상록(冥想錄)은 총 12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장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쓴 글이 아니고 그때 그때의 떠오른 생각을 기록한 자기 성찰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명상록에서는 이성(Idea)과 존재 이유(Raison D’etre)라는 두 가지 철학적 명제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정의(定義)가 반복돼 나타난다. 인간으로 더 바랄 것이 없는 권세와 부와 명성을 지닌 로마 제국의 황제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닿으며 오만과 착각에 빠질 수 있는 자신을 겸손하게 경계한 태도는 지금에 사는 우리도 귀하게 본 받을만 하다. 요즘 필자가 명상록을 다시 읽으며 우리의 인생의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한다.행복은 그 사람의 가문이나 지위나 학문이나 재물의 풍족함에 있지 않고 우리 일상의 사소함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에게 건강이 있고 자유가 있고 가정이 있고 친구가 있고 그리고 일용할 양식이 있다면 우리는 일단 행복한 것이다.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돈 많이 벌고,명예를 얻는 것, 다 좋은 일이지만 인생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요즘 많이 생각한다. 직업에는 귀천(貴賤)이 없지만 사는 방식에는 귀천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생활을 바르게 해서 귀하게 사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몫일 뿐이다. 은퇴한 요즘의 나는 로마 황제가 부럽지 않다. 세상의 절대 권력으로 군림했던 로마 황제도 실상은 고독한 한 인간이었을 뿐, 보통 사람 우리가 느끼는 그런 자유와 행복은 누리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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