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프랑스 파리에서 뉴욕 헤럴드의 유럽판으로 창간된 영자신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최근 인터내셔널 뉴욕타임스로 제호가 바뀌었다. IHT는 파리에 사는 미국인들에게 고향 소식과 주식가격 및 프로야구 성적 등을 알려주고자 창간됐는데 이 신문의 모신문인 뉴욕 헤럴드는 1924년 뉴욕 트리뷴과 합병, 뉴욕 헤럴드 트리뷴으로 발간되다가 1966년 폐간됐다.
내가 IHT의 제호 변경 뉴스를 읽고 대뜸 생각난 것이 가슴에 뉴욕 헤럴드 트리뷴이라는 글자가 박힌 소매 짧은 셔츠를 입은 숏커트 헤어스타일의 미국인 유학생 패트리샤(진 시버그ㆍ사진)가 파리 샹젤리제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하며 신문을 팔던 모습이다. 귀엽기도 해라.
패트리샤는 프랑스 영화계의 새 물결인 ‘누벨 바그’의 효시적 작품으로 장-뤽 고다르의 장편영화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Breathlessㆍ1960)의 여주인공이다. 패트리샤의 프랑스 애인은 서푼짜리 날건달 미셸(장-폴 벨몽도).
볼 때마다 새로운 ‘네 멋대로 해라’(제목이 볼품없다)는 미국 갱영화를 혁신적이요 도전적으로 살짝 비틀어놓은 영화로 빠른 속도와 재즈음악 그리고 라울 쿠타르의 파리 시내를 흑백으로 찍은 로맨틱한 이미지와 장면과 장면을 과감히 뛰어 넘는 점프 컷 편집이 아찔하게 경이로운 사뿐한 작품이다.
영화는 당시 시대사조인 실존주의 분위기와 함께 젊은이들의 소외감과 반항을 내포하고 있는데 이런 특성을 밉지 않은 악동 같은 벨몽도가 경쾌하게 표현해 낸다. 그가 국제적 스타가 된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를 나온 다음 해 서대문 극장에서 봤는데 그 때 받았던 거의 충격적인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야, 세상에 이런 영화도 다 있구나”하고 감탄했었다.
할리웃의 갱스터 역 단골이던 험프리 보가트를 숭배하는 미셸이 마르세유에서 훔친 차를 타고 파리로 달리다가 따라오는 경찰을 총으로 쏴 죽인다. 아무 가책도 없는 마치 아이들의 총 장난하는 듯한 살인이다.
파리에 도착한 미셸은 저널리스트 지망생인 미국인 애인 패트리샤의 아파트에 숨는다. 미셸의 아기를 가진 패트리샤는 푼돈 벌이로 샹젤리제에서 “뉴욕 헤럴드 트리뷴”하며 신문을 판다. 그러나 다소 이기적이요 아직 한 남자에게 매이기엔 너무 젊은 패트리샤의 배신으로 미셸은 추격하는 경찰을 피해 골목으로 달아나다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미셸이 경찰의 총을 맞은 뒤 비틀거리며 도주하는 죽음의 장면이 상당히 긴데 그는 죽는 순간에도 히죽이 웃으며 “그 것 참 역겹네”라고 내뱉는다. 미셸에겐 죽는 것조차 사는 것처럼 별게 아니다.
모든 것이 즉흥적인 87분짜리 이 짧은 영화는 실제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이 라스트신 외에도 미셸이 훔친 차를 타고 달리면서 태양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장면과 미셸과 패트리샤의 침대 시트 속 아이들 희롱 같은 러브신 등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다.
벨몽도의 모습과 연기가 유난히 기억되는 영화다. 중절모를 쓰고 재킷에 넥타이 그리고 주름진 바지를 입은 그는 입술 끝에 담배를 물고 거푸 피워대는데 영화에서 그가 숭배하는 보가트는 애연가로 후두암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벨몽도는 엄지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문질러대는 독특한 제스처를 쓰면서 일그러진 미소를 짓는데 영화를 본 뒤 나도 마치 미셸이나 된 듯이 그 흉내를 냈었다.
‘네 멋대로 해라’는 프랑솨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와 알랭 르네의 ‘히로시마, 몬 아무르’와 함께 누벨 바그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영화다. 1983년 리처드 기어와 발레리 카프리스키 주연의 동명 미국판으로 만들어졌으나 프랑스제만 못하다.
그런데 나는 2010년 1월 실제로 벨몽도를 만났었다. 내가 속한 LA 영화비평가협회가 그에게 생애업적상을 주었을 때였다. 벨몽도는 백발에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였지만 여전히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모습이었다. 난 얼른 그에게 달려가 악수를 청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사인까지 받았었다. 벨몽도는 상을 받고 “비평가들이 나를 자주 혹평 했는데 이렇게 비평가들로부터 상을 받으니 고맙다”고 답례를 했었다.
그런데 그는 뇌일혈 후유증으로 몸의 오른쪽을 쓰지 못했다. 그런 벨몽도를 보자니 탄력 있던 미셸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새삼 세월의 무상이 느껴졌었다. 벨몽도(80)가 남은 생을 잘 보내기를 기원한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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