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 (which translated means Teacher),
“where are you staying?"
"Come, and you will see."
“라삐, (‘라삐’는 ‘스승님’이라는 뜻)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와서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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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말로 전하는 게 아닙니다.
진리는 글로 풀어 가르칠 수 없습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에 해박하고, 팔만사천 경전을
두루 통달해도, 삶과 체험 속의 진리는 늘 어렵습니다.
다만, 성현의 삶을 통해 우리는 진리를 배웁니다.
부처님의 삶이 진리요 예수님의 삶이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일상을 보면 8만4천 법문이 그대로 들립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바이블[Bible] 전체가 이해됩니다.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나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서 모두 한결같이 언행일치의 귀감을 보여줍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차라리 말보다는 행동으로 진리의
참 모습을 내어 보인 선각자/선지자의 실상. 그 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기에 우리의 일상도 ‘일일시호일
(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 되는 게 아닐까요?
요한 복음서 1장, 그 심오한 그윽함에 취해봅니다.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God."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한처음’에 계신 말씀[Logos]이니라. 그렇게 시작해,
36절에 이르면 드디어 예수님의 첫번째 제자들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 이끄는 말씀,
그 첫 마디는, "Come and See!" ‘와서 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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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said to them,"Come, and you will see."
So they went and saw where he was staying,
and they stayed with him that day. [1: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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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요한 복음서는 대화와 묘사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튿날 ……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별 말씀 안하시고 그저 "와서 보아라"고
하십니다. "Come, and you will see." 오라, 그럼 너희는
보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냐? 그저 와서 보라.
그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이렇게 참 스승과 참 제자
사이의 참된 문답이 이루어진 겁니다.
그렇게 "와서 본" 제자들은 응당 스승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강렬한 에너지에 감전됩니다. 이심전심 공명이
서로의 가슴을 관통합니다. "Come and you will see."
"Follow me." "Come and see." 모두 짤막한 말들입니다.
지극히 간단한 두서너 마디 말씀들 속에 깃든 심오한
공명(共鳴), 느낌이 오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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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n he put away his robe and bowl,
washed his feet, arranged his seat,
and sat down.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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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의 다이아몬드 금강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계셨다.
이 때 세존께서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성에 들어가셨다. 그 성 안에서
차례대로 걸식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셨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이게 뭔가?
아니, 불가의 보도(寶刀)라는 금강경은 왜 이런
시시한 일상을 지루하게[?] 전하며 말문을 여는 걸까?
다른 경전들처럼 부처님 이마의 빛이 방광하는 화려한
시작을 접고 왜 부처님이 걸식하고 돌아와 발씻고 앉는
시시콜콜한 얘기로 첫 장을 삼는 걸까? 그럼에도,
많은 경전 풀이는 왜 이 금강경 첫 장만 제대로
깨우치면 금강경 32분(分)을 모두 깨친 거라는 걸까?
……
바로 그겁니다.
"Come and see!" 와서 보라!
부처는 이렇게 산다. 여래는 그저 이렇게 살 뿐 딱히
설(說)할 무엇이 있는 게 아니다. 부처는 단 한 마디도
무엇을 설한 바 없노라! 여래는 그렇게 와서 그렇게 살고
그렇게 가는 사람이니라.
바로 그겁니다.
그러니 달리 말할 재간이 없습니다.
"Where are you staying?" 어디 묵고 계십니까?
"Come, and you will see." 와서 보면 안다.
Come and See! 와서 [직접] 보라!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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