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딸아이가 의학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입학식 참석차 필라델피아에 다녀왔다. 유펜대학 의학과 신입생은 168명인데 여학생이 48% 였다. 예전보다 의대에 여학생들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화이트 코트 세러머니’라고 불리는 입학식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한사람씩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를 줌으로써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어 주는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학부에서 생물학, 유전학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문과를 전공했다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딸아이도 학부에서 사회학 계통을 공부하였기에 다시 의예과를 1 년간 공부해야 되었지만, 학부에서 문과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의예과 과정의 기회를 제공하는 미국의 교육제도가 고마웠다.
유펜 대학은 전도자 조지휘필드에 의해서 설립 추진되다가 벤자민 프랭클린과 동료들에 의해 1751년에 개교하였다. 1765년에 세워진 의과대학은 미국 최초의 의대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이자 정치가였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실용성과 응용성을 중요시하고, 사회 환원과 실용을 강조하는 학풍을 만들어갔다.
“도덕성이 배제된 법은 쓸모없다”가 학교의 표어였다.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법정신이다”라는 뜻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는데, 의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유펜 의료진의 주요업적 중의 한 가지는‘필라델피아 염색체’의 발견이다. 인체의 모든 유전정보는 23쌍, 즉 46개의 염색체 안에 있다. 염색체 안에 키가 크다든지, 쌍꺼풀의 눈이라든지 혹은 왼손잡이 등의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들어있다.
1960년 노웰 박사와 헝어퍼드 박사는 최초로 백혈병 환자들에서 22번의 염색체가 정상보다 매우 짧아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암이 유전자의 결함으로 생긴다는 첫 증거이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비정상적인 22번 염색체를 발견한 연구진이 필라델피아에서 일을 했으므로 ‘필라델피아 염색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이 발견은 의학연구에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고 이를 토대로 연구가 계속된 결과 40년 후에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글리벡’이 탄생하게 되었다. 필라델피아 염색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일으키는 티로신 카이네이즈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약이 바로 ‘글리벡’이다. 마치 유도 미사일처럼 암세포만을 선택 파괴하므로 부작용이 매우 적다. 이 항암제의 등장으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생존율은 14%에서 95%로 올라갔다. 그 후 암세포만을 표적으로 하는 항암제가 여럿 개발 되었다.
이런 성공의 과정에는 여러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져야 했다. 글리벡의 초기 시험단계에는 아무도 비용을 투자해서 임상실험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드러커 박사는 죽어가는 암환자들에게 해줄게 없다는 걸 절감하고 노바티스 제약회사를 찾아가 임상실험을 설득했고, 맥나라마라는 환자는 3,000여명 환자들의 서명을 담은 청원서를 노바티스에 제출하였다고 한다. 그후 임상실험에서 놀라운 효능이 입증되었고 2001년 글리벡은 승인되었다. 이 과정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드러커 박사에게 1억 달러를 기부하여 나이트 암 연구소를 세웠다.
필라델피아에 간 김에 그곳에서 멀지 않은 유명한 식물정원 ‘롱우드 가든’도 방문해 보았다. 130만평의 넓은 대지에 5,500여 종류의 식물이 있는 이 식물정원은 분수정원, 이탈리안 워터가든, 야외극장 등이 어우러져 방문객들의 마음에 아름다움과 사랑을 꽃 피우고 있었다. 이 정원은 프랑스 이민자의 후손이며 합성고무, 나일론 발명으로 유명한 ‘듀퐁’씨가 기증한 것이다. 튜퐁 씨는 살아있을 때 그 정원에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때는 직접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가 정원의 주인인 것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유명한 ‘튜퐁’씨인 줄 모르는 손님도 때로 있었다고 하니 그의 겸손한 인간미에 머리가 숙여진다.
나는 딸아이와 젊은 의학도들이 좋은 지식뿐 아니라 필라델피아의 선구자들이 보여준 의학의 실용화와 지식과 부의 사회 환원을 많이 배우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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