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부모 집에 들어와 산다. 직장을 잃고 경제사정이 어려워 부모 집으로 들어와야 했던 젊은이들이 버젓한 직장에 다시 나가면서도 계속 부모 집에 머물러 산다. 30을 훌쩍 넘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안 한다. 젊은 부부들이 아기를 낳지 않는다.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는 부부들이 집을 소유하기 보다는 아파트 렌트를 선호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시대 풍조이다.
이 풍조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틴에이저들이 운전면허증 취득을 되도록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미시간대학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30년 전에는 17세-19세 인구의 80%가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었으나 이제는 60% 로 감소했는데 최근 들어 이 감소율이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또한 이 현상을 인터넷 사용의 상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러한 현상 자체를 놓고 단순히 좋다, 나쁘다, 라고 이분법식 평가를 할 수는 없다. 만일에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걷기를 선호한다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 의하면 600명의 17-19세 틴에이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운전면허 취득을 미루는 세 가지 큰 이유가 바쁘고 시간이 없다, 차에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리고 운전을 해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는 16세 생일 날, 바로 그 날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어 했다. 하루도 더 기다릴 수가 없다고 떼를 썼다. 결국은 내가 지고 말았다. 지금도 15년 전 그 날이 기억에 생생하다. 학교를 빠지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아이였건만, 생일 날 조퇴를 시켜서 운전면허 시험 보는 곳으로 데리고 갔고 운전면허증을 손에 들고 개선장군처럼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세 살 아래인 둘째 아이도 누나가 관례를 만들어 놓았으니 물론 그렇게 했다. 16세가 넘었는데 스쿨버스를 타거나 부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니면 커다란 망신으로 여겼었다.
시사지 타임의 조얼 스타인 기자는 미시간 대학의 이 새로운 연구내용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 이유를 직접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주위의 틴에이저들을 인터뷰했는데, 하나같이 연구 내용에서 발표한 이유를 그대로 말하더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부모들은 틴에이저 자녀들의 운전면허증 취득을 원하지만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중 17세의 한 여학생은 자신을 포함한 절친한 친구 네 명이 모두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분명히 또박또박 말했다고 한다. “운전 면허증을 갖는다는 건 이제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과 같은데, 사양해요! 아빠가 운전해 주는 차에서 오고 가면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데 뭣 하러 귀찮게 내가 직접 운전을 해요?”라고.
“뭣 하러 귀찮게”라는 표현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한창 뭐든 하고 싶고, 저지르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나이에 자유 대신에 편함을 선택하다니! 젊은이들의 귀차니즘이 이제 틴에이저들에게도 감염이 되었단 말인가. 자유와 독립 대신에 편함을 선택하는 귀차니즘. 이 현상은 50년 후 쯤 어떤 나비효과를 가져올까.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미세한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론.
아니다. 이 현상은 나비효과의 이론으로 분석해보면 결과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이 일으킨 나비효과. 가상의 현실인 소셜미디어로 친구들과 언제 어디서나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24시간 재미있는 동영상, 게임, 샤핑이 가능한데 굳이 집을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 하러 귀찮게 운전교습을 받고, 면허 시험을 보고, 부모들 눈치 보면서 차 열쇠를 받아내고, 잔소리 들어가면서 운전을 하고, 용돈을 절약해서 차의 연료비를 마련하는 가 말이다.
‘뉴스엔’ 인터넷 신문에서는 최근에 이 귀차니즘에 관한 기사로 9월2일 방송된 KBS 2TV의 ‘안녕하세요’ 의 프로 내용을 소개했는데, 그야말로 귀차니즘의 극치였다. 이 기사에 의하면 ‘안녕하세요’에 등장한 21살의 젊은 여성은 밥 먹기도 귀찮아 꼬박 굶기도 하고, 방에서 아예 나올 생각을 안 하고 화장실 갈 때만 나오며, 남자 만나는 것도 귀찮아 연애를 안 하고, 주말엔 씻지도 않고,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바닥에 있는 리모콘 좀 주워 달라’는 심부름을 시킨다는 것이다. 이 예는 귀차니즘의 극단적인 경우일 것이다.
몰론 세상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니 자유와 독립 위에 편함을 우선순위로 놓는 이 풍조도 변할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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