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오스카 시상식은 과연 흑인들의 잔치가 될 것인가. 올 들어 유난히 흑인 감독 및 제작자들이 만들고 흑인 배우들이 나오는 흑백 인종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여러 편의 영화들이 비평가들과 관객의 호응을 함께 받으면서 할리웃에서는 지금 2013년 시상시즌은 흑인 영화인들의 기념비적 해가 될 것이라는 소리가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
백인 위주의 할리웃은 자고로 소위 소수계인 흑인 영화인들을 홀대해 왔고 흑백문제에 대해서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다뤄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스파이크 리는 자기 영화를 통해 사사건건 백인들을 비난하고 있고, 제작자와 감독과 배우를 겸한 타일러 페리는 아예 애틀랜타에 자기 스튜디오를 짓고 흑인 위주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흑인으로 처음 오스카상을 탄 배우는 1939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뚱보 하녀로 나와 조연상을 받은 해티 맥대니얼이다. 첫 주연상은 1963년에나 와서야 시드니 포이티에가 ‘들의 백합’으로 받았다. 그래서 포이티에는 지금도 할리웃의 흑백선을 과감히 지워버린 영웅으로 취급 받고 있다. 이 뒤로 수십년이 지나도록 흑인 배우들은 오스카 주연상을 받지 못하다가 2001년 덴젤 워싱턴(트레이닝 데이)과 할리 베리(몬스터스 볼)가 동시에 남녀 주연상을 받으면서 할리웃에 흑인 경사가 났었다.
올 들어 흑백문제를 다룬 흑인 영화로서 몇 개 부문에서 내년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영화가 ‘리 대니얼스의 버틀러’(Lee Daniel’s Butler)다. 현재 상영 중인 이 영화는 백악관에서 30여년간 모두 8명의 대통령의 시중을 든 시슬 게인즈(포레스트 위타커)의 삶을 통해 본 민권운동의 역사를 다룬 실화다. 오스카 작품과 감독(리 대니얼스는 흑인이다) 및 남우주연 그리고 게인즈의 아내로 나온 오프라 윈프리가 조연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사실 올 들어 흑백문제를 다룬 첫 영화는 ‘42’다. 프로야구의 흑백 차별을 무너뜨린 브루클린 다저스의 재키 로빈슨의 얘기로 로빈슨 역의 채즈윅 보즈만이 오스카 주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 영화와 ‘버틀러’는 모두 비평가와 관객의 호응을 받아 호평과 흥행의 균형을 요구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마음을 살 만한 것들이다.
‘버틀러’에 앞서 7월에 개봉된 소품 독립영화 ‘프루트베일 정거장’(Fruitvale Station)도 오스카상 후보로 얘기되고 있는 영화다. 2008년 북가주 베이 에리어 전철 정거장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흑인 청년 오스카 그랜트의 실화. 포레스트 위타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아 작품과 흑인인 라이언 쿠글리 감독 및 그랜트 역을 카리스마 있게 표현한 마이클 B. 조단 등이 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15일에 끝난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탄 ‘12년간의 노예’(12 Years a Slaveㆍ사진)는여러 편의 흑인 영화들 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해방된 노예 솔로몬 노덥(치웨텔 에지오포)이 납치돼 노예장사에 의해 미 남부 농장에 팔려 12년간 죽을 고생을 하다가 자유를 찾은 실화다.
오스카 작품상과 함께 감독(흑인인 스티브 매퀸) 및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것이 거의 틀림없다. 과거 토론토 영화제서 관객상을 받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왕의 연설’이 오스카 작품상을 탄 전례에 비춰 벌써부터 이 영화 역시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연출, 연기 및 촬영 등 여러 면에서 훌륭한 이 영화는 내가 보기엔 과도한 역사 교과서 같다. 영국 감독 매퀸의 흑인판 ‘쉰들러 리스트’로 그는 마치 영화 속 백인 농장주가 노예를 채찍질 하듯이 관객의 감관을 유린하면서 미국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있다. 2시간 10여분간 고문을 받는 느낌이다.
역시 토론토 영화제서 호응을 받은 ‘만델라: 자유에로의 긴 걸음’(Mandela: Long Walk to Freedom)도 작품과 남우주연(이드리스 알바) 및 여우조연(위니 만델라 역의 네이오미 해리스)상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역사적 사건을 사실적으로 다룬 영화들로 흑인 영화들이 한 해에 이렇게 여러 편 오스카상 후보로 거론된 경우는 할리웃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흑인 영화의 르네상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버틀러’와 ‘만델라’를 배급하는 하비 와인스틴은 그 이유를 ‘오바마 효과’라고 지적한다. 백악관주인이 인종차별을 극복한 흑인인 버락 오바마인 만큼 자연 영화사와 관객 모두 흑백문제에 대한 관심과 시선을 새롭게 하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는 워싱턴의 시드니포이티에다.
편집위원/hjpark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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