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마침 남편의 생일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레익타호를 다녀왔다. 레익타호는 베이에어리아나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여름에는 비치에서 수영도 하고 겨울이면 스키를 탈 수 있는, 말하자면 플레이 그라운드 같은 곳이라 그 유명함을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장장 8천 피트 산꼭대기에 바다처럼 그렇게 큰 호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처음 왔던 70년대 초반엔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후로 지인들의 별장이 있어서 자주 왔던 곳인데 이번엔 아이들이 저희들은 캠프를 하고 우리 부부에겐 동화 속에서나 나올듯한 작은 통나무 집을 빌려 주었다.
그 집은 집 전체가 천장이나 벽이며 바닥까지 온통 소나무로 지어져 있어서 아늑하고 어디선가 소나무 향기가 폴폴 새어 나오는 듯 했다. 소나무 무늬의 특별한 둥근 모양의 나무테가 집안 가득히 있어서 소박한 아름다움이 마치 백설공주가 일곱 난장이와 함께 금방 나타날 것만 같았다.
침실 하나에 더블 베드와 두개의 벙커 베드가 있고 작으마하지만 부엌이 달린 거실과 작은 탁자까지 있어서 스토브와 전자레인지도 갖춘 완벽한 작은 집이었다. 옛날에 본 ‘초원 위에 작은 집’이라는 방송 드라마가 있었는데 그 집은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서 마치 내가 그 옛날 초기 서부의 개척자가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또 나는 ‘엉클 톰스 캐빈’이라는 마담 스토우가 쓴 그 유명한 소설도 생각이 났다. 그 책을 읽었을 때가 초등학교 삼학년이던가 했는데 그때 나는 얼마나 슬펐던지 펑펑 울면서 그 소설을 밤새 읽었다. 노예이던 톰스가 다른 주인에게 팔린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헤어지는 장면이 너무 슬퍼 그 슬픔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기도 했다. 그 소설 때문에 남북전쟁이 터졌다는 얘기도 있다.
딸 아이 부부와 세아이들과 막내 부부와 딸애 친구인 다이아나의 가족까지 합쳐 무려 13명의 대 식구였다. 밖에서 바베큐를 해서 먹는 일도 큰 일이었다. 피크닉 테이블 3개를 붙여야 겨우 13명이 앉을 수 있었다. 텐트를 치는 것을 보니 침대도 공기를 넣은 대형 침대를 가져와서 바닥에 슬리핑백을 놓고 자나하고 생각했던 나의 무식함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젊었을 때 우리들도 몇번 캠프를 해보았지만 우리들은 맨땅에 담요를 깔고 슬리핑백만 펴고 잤던 것을 생각하니 이젠 캠핑도 호화판으로 변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캠프파이어에 머쉬멜론도 구워 먹고 재잘대고 어른들은 유달리 밝게 펼쳐진 은하수를 바라보며 끝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먼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아름다운 캘리포니아의 밤이었다. 다음날 아침 커피 한잔을 마시고 집밖으로 걸어나오는데 가까이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우리 캐빈이 있는 곳에서 오십보도 채 안되는 곳에 한국인 젊은 부부가 캠핑을 하고 있어서 어찌나 반가운지 통성명도 하기 전에 우리 캐빈으로 초대를 해서 커피와 바나나 케익으로 대접을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의사인 남편이 1년 계약으로 샌프린시스코 의대에 교환교수로 이주 전에 왔다고 했다.
재미 있었던 것은 그의 아내인 젊은 엄마가 그날 아침 ‘이런 곳에서 한국사람을 만났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시점에 나를 만났다고 말해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오전내내 오며가며 그들을 만났고 우리들은 전화번호도 교환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날 그 젊은 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인들이 친절하고 인심이 좋은 것은 아마 이 좋은 기후와 넉넉한 물자를 가져서가 아닌가하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불경기라 해도 미국은 아직 부자 나라다. 돈 몇 십불만 내면 미국 전체에 이런 KOA 같은 캠핑장이 있어서 부자도 가난한 자도 이곳에서 물좋고 산좋은 곳에서 평등하게 바캉스를 즐기고 질 좋은 삶을 누릴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갖고 있는 국력이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감사의 기도를 했다. 아직 우리 부부가 건강하고 부모를 생각하는 자식들을 가진 우리들이 새삼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과 막내 아들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얘기를 나눈다. 예전에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를 오갈 때는 남편이 운전을 하고 아이들은 어려서 멀리 맥도날드의 사인이 보이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이젠 한때 젊었던 우리들은 나이 먹고 늙어가고 어린 아이였던 애들이 자라 대신 운전대에 앉아 우리들을 보살펴 준다는 생각을 하니 기특하기도 하지만 한편 서글픔이 몰려오기도 한다. 아마 이런 것이 인생인가 보다. 태어나서 한때 젊은 때가 있었다면 어느새 세월과 함께 나이 들고 이젠 우리가 보살피던 아이들이 대신 우리들을 보살피는 날이 오고 또 그들도 언젠가는 그들의 자식들이 그들을 보살피는 날이 오지만 우리들은 함께한 추억이 있기에 삶은 아름다운가 보다.
언제 또 그 통나무 집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 집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내 자식들은 우리가 어느날 먼저 가도 그 추억을 두고두고 음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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