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발행될 영국의 신권에 여류 소설가의 초상화가 새겨질 것이라고 한다. 소설가의 얼굴이, 그것도 여류 소설가의 얼굴이 10파운드 지폐에 새겨진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소설 ‘오만과 편견’의 저자인 제인 오스틴. 현재 이 10파운드 지폐에는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사진이 찍혀있는데, 곧 제인 오스틴으로 바뀌는 것이다.
내가 뛸 듯이 기뻤던 것은 그녀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 지폐에 그녀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한 구절도 박힐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독서만한 즐거움은 없다, 라고 선언한다!”영국은 1970년부터 지폐 뒷면에 역사적 인물을 집어 넣어왔지만 대다수가 남자였다. 1970년 중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10파운드짜리 지폐에 등장했지만 그나마 1990년대 사라졌고, 현재는 여왕 외에 지폐에 새겨진 여성으로는 감옥개혁의 업적을 남긴 엘리자베스 프라이가 유일하다. 그러나 곧 윈스턴 처칠로 바뀔 것이라고 한다.
영국정부가 제인 오스틴의 업적을 진정으로 인정하는 또 하나의 작은 뉴스거리가 최근에 있었는데, 제인 오스틴의 유품이 경매에 나와 외국으로 나가게 된 걸 뒤늦게 정부가 막으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미국의 팝스타 켈리 클락슨이 지난 해 런던 경매에서 15만여 파운드(약 24만 달러)에 낙찰 받은 오스틴의 반지를 미국으로 가져가려 하자 영국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자칭 ‘역사광’이자 오스틴의 열렬한 팬인 클락슨은 작년 영화판 ‘오만과 편견’의 촬영지인 영국 중부 더비셔를 방문한 데 이어 소더비 경매에 나온 오스틴의 작품 ‘설득’ 초판과 함께 이 반지를 낙찰 받았다. 금과 터키석으로 장식된 이 반지는 오스틴의 여동생 후손들이 보관해오다 작년 경매에 내놨다고 하는데, 오스틴이 소장한 보석으로는 이 반지를 포함해 3점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41세에 요절한 제인 오스틴의 검소한 생활상을 고려하면 그녀와 관련된 물건은 무엇이든 진귀하다며 이러한 입장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곧 개봉될 ‘오스틴랜드’ 영화의 열기도 만만치 않은데, 재미있는 것은 소니 영화사가 특별시사회를 열면서 여자들만 초대를 했다고 한다. 오스틴의 팬이 대부분 여자라는 말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여자들은 모두 오스틴의 골수팬으로 소설의 주인공들이 입었던 1800년대의 복장을 하고 왔고, 시사회 내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 집에는 여자가 셋이다. 딸, 며느리, 그리고 나. 딸과 며느리도 제인 오스틴의 열렬한 팬이다. 특히 며느리는 오스틴 소설을 여러 번 읽어, 외우는 대사도 한 두 대목이 아니다. 두 살배기 딸을 둔 딸도 대학 졸업 이후 세 번이나 이사를 해서 학생시절 짐은 거의 정리를 했건만 고등학생 때 읽은 제인 오스틴의 책만은 아직도 책꽂이에 꽂아두고 있다.
나도 고등학생들 영어 개인지도를 할 때면 그녀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을 필독서로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고백하지만 나는 오스틴의 소설을 한 편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녀의 대표작은 다 손에 잡았었고 줄거리와 테마 인물분석 등을 참고서적으로 공부는 했다. 수박 겉핥기만도 못한 소설 감상을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여태까지 오스틴을 아는 척, 그녀의 작품을 읽은 척 해왔다. 글을 쓰고 문학을 사랑한다면서 영국문학의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그녀의 작품을 한 편도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러 번 그녀의 작품을 읽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끝을 낼 수가 없었다. 부자 남자를 잡아 결혼하려고 하는 여자 주인공들의 대화에 와락 짜증이 나고, 번번이 걸려 넘어져서 책을 닫아버리곤 했다.
이 고백과 더불어 나는 이제 다시 시도해보려고 한다. 오스틴 소설 읽기 시도를 다시 해보려고 한다. 작가가 고마워서이다. 여자가 소설을 쓰는 걸 고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던 시대에 살았기 에 살아서는 익명으로 소설을 발표해야했지만, 200년도 넘은 지금, 책을 읽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스마트폰 시대에 독서의 즐거움과 가치를 다시 상기시켜 주게 될 작가의 공로가 고마워서이다. 영국 국민은 이제 소소한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서 10파운드 지폐를 사용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는 독서만한 즐거움은 없다, 라고 선언한다!”라는 문구를 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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