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에 내가 이 지역 문인들의 모임에서 우리가 살다 온 고국의 여름을 상징하는 소리가 어떤 소리라고 생각 하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이 어떻게 대답 할지 궁금하다. 더러는 해수욕장에서 인위적인 옷을 벗어져끼고, 반 벌거숭이 자연의 알몸으로 내지르는 해방감에 넘치는 소리라고 할 것이고, 더러는 계곡의 찬물에 몸을 던져 물장구 치는 천진스런 애들 소리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또 더러는 장대 같이 쏟아지는 빗줄기 소리라고도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여름을 상징하는 소리는 한여름 뙤약볕 고목나무에 매달려 따갑게 우는 매미 소리지 싶다.
우리는 이민 오기 전에 4계절이 뚜렷한 그 땅에서 제각기 다른 계절의 소리를 들어 왔었고 또 4계절에 따라 색채가 다른 계절의 색깔에 길들어져 왔었다. 그런데 이 땅 특히 사계절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는 계절 변환의 감각을 잊고 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봄이나 여름 그리고 겨울에 걸쳐 똑같은 음색으로 우는 새소리에 길들어져 살고 있다. 그리고 이른 봄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의 빛깔 말고는 일년 열 두달을 파란 수목에 싸여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땅 한국에서 살면서 우리 머리 속에 입력 되어진 4계절의 소리와 색깔 그리고 정서를 반추하면서 언젠가는 이 땅(미주)을 훌쩍 떠날 것만 같은 일시기류의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음악하는 사람은 4계절의 각기 다른 음색의 높낮이를 5선지란 줄 위에 담아 냄으로써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낸다면, 그림 그리는 화가는 계절의 다양한 색채를 화폭 위에다 조화 시킴으로써 한 폭의 그림을 탄생 시킨다. 그러나 음악가의 음감에다 화가의 색감에 더하여 상상력이란 영감과 어릴적과 성장과정에서 인상 깊게 느꼈던 체험이 덧붙여진 문학적인 서술이 곧 문학작품이지 싶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성장기의 환경과 내 몸속에 배어 든 체험 그리고 그 시절 내 귀에 담겨진 4계절의 소리와 내 시각에 칠해진 색깔이 후일 내가 글을 쓰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던게 사실이다. 쌀이 나무에 열린다고 잘못 알고 자란 서울 애들과는 달리 나는 어린시절을 경상도 남단 그것도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갯마을을 옮겨 다니며 살았었다.
게다가 방학 때의 거의 모든 날을 농촌 마을인 친할머니 집과 큰 채소밭을 지닌 외삼촌 집에서 지내기 일수였다. 이런 과정에서 어릴적 부터 내 몸에는 바닷가의 갯비린내와 농촌과 채소밭을 감싸 흐르는 계절의 소리와 색깔이 자연스럽게 배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짧은 봄방학 때에 친할머니집 무논가의 연못에서 알에서 갓깨어난 올챙이들이 헤엄치는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았던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올챙이’란 동극을 썼었다. 그리고 여름방학 때 외삼촌의 원두막에 배를 깔고 엎뜨려 방학숙제를 하면서 내려다 본 참외밭의 그 노랑 참외를 생각하면서 ‘외밭골 아이들’ 이란 동극을 쓰기도 했었다. 그 뿐인가? 친할머니 집 이웃에 사는 눈망울이 아기사슴처럼 맑은 내 또래 나이의 ‘훈’이란 이름의 사내 아이가 장에 가신 어머니를 기다리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풀잎을 따서 각시를 만들던 그 천진스러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지난 날을 상기하며 쓴 동극 ‘풀잎각시’는 나의 대표작 중의 한 작품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어느 해 늦가을, 밤나무골이란 마을에 사는 내 초등학교 동급생인 ‘영수’가 엿장수인 홀아버지와 외롭게 살면서 같은 반 친구들에게서 엿장수 아들이라고 놀림 받던 영수의 애처러움을 되살리며 만든 작품이 바로 ‘밤나무 골의 영수’ 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동문학에서나 성인문학에서 겨울철을 소재로 한 작품이 별로 없는데 이숍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를 극화한 이 극본은 아동극경연대회와 초등학교 학예회에서 고학년은 ‘숲속의 대장간’ 중학년은 ‘금도끼 은도끼’와 함께 저학년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 것이다. 한편 내 초등학교 시절의 거이를 거제도 관포 마을에서 지냈을 때 그 마을 언덕받이에 있는 당집 앞에서 풍어제(豊漁祭)를 지내던 광경과 그 갯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닭섬’에 얽힌 전설을 소재로 다룬 ‘섬마을의 전설’은 후일에 초등학교 6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어릴적부터 몸으로 체험했던 갖가지 경험과 사연, 그리고 4계절의 소리와 색깔은 고스란히 내 극본과 수필 속에 녹아서 담겼던 것이다. 한편으로 내가 1959년 성인희곡작가로 데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극작가로 발길을 옮겼지만 그래도 나는 성인극 작품 집필의 끈은 놓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내가 현대문학에 발표한 여러 편의 성인희곡 중에 나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선주(船主)는 수산계의 관직에서 물러난 아버지께서 장남인 내가 딴따라의 길로 빠지는 통에 동생들의 대학 뒷바라지를 위해 한려수도 물길 길목의 잠포란 갯마을 앞바다에다 그물을 깔아 놓고 멸치 잡이 어장을 하시면서 한숨의 나날을 보내시던 아버지의 모습, 다시 말해서 몰락 해가는 한 어장 애비의 애환을 그린 작품인 것이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의 한숨소리가 서려있고 내 문학과 연극의 정렬이 젖어있는 한려수도의 섬 사이를 배질해 가던 똑딱선의 발동기 소리와 그 수로(水路) 5백리 길 구비 구비 물결에 햇빛이 부서져 은빛 비늘 같이 반짝이든 그 그림 같은 풍경을 왜 잊지 못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옛날 그 여름날에 친할머니 집 앞 실개천의 버드나무 가지에서 더위를 견디지 못해 따갑게 울던 그 매미가 이 한여름에도 울고 있겠지라는 반딧불 같은 동심이 되살아 나는 것만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