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초고층 빌딩을 짓고 나면 왠지 좋지 않은 일들이 닥친다는 내용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이 그 첫 번째 예가 될 것이다. 인간들이 높이 탑을 쌓아 하늘의 영역에 도전하려다 신의 노여움을 산 사건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려는 야심찬 시도를 하지만 실패한다. ‘바벨탑’은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해석된다.
현대판 ‘마천루의 저주’는 지난 1999년 앤드류 로렌스라는 한 투자은행 연구원이 ‘마천루 지수’라는 것을 고안해내면서 소개되었다. 건축사에서 기념비적인 초고층 빌딩들이 건립되고 나면 경제위기가 닥친다는 가설이다. 1931년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세워졌을 때는 대공황이 깊었고, 1973년 세계 무역센터 건립 즈음에는 1차 오일쇼크, 1998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타워 완공 때는 아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쳤다는 등이다.
학계에서는 별로 무게를 두지 않지만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최첨단 공법과 천문학적 돈이 필수인 초고층 건축은 경제가 웬만큼 좋아서는 시도되기 어렵다. 경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시작이 되는데, 경제도 생물이다. 활황은 경기과열로 이어지고 거품이 심해지다 꺼지면서 불황이 닥친다. 건물 완공은 시기적으로 경제가 바닥인 때와 겹치기 쉬운 것이다.
초고층 빌딩, ‘바벨탑’은 인간의 자신감과 야망의 구체적 산물이자 상징이다. 성공이 최고의 가치인 정글 자본주의 사회에서 탁월한 성취, ‘바벨탑’은 그 어느 때보다 박수를 받지만 족쇄가 따라 붙는다. 성공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이다. 현대판 ‘바벨탑의 저주’이다.
한국 드라마의 거장, 드라마왕국의 제왕으로 불렸던 김종학 PD의 죽음은 충격적이다.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쏟아 부으며 한국드라마의 기념비적 작품들을 만들어냈던 그가 하룻밤에 1만5,000원 하는 쪽방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43.6명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자살은 더 이상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사회적 일상이 되었다. 인기 절정을 누리던 스타들이 자살하고, 전직 대통령이 자살하고, 성적이 나빠서, 취직이 안 되어서, 빚에 몰려서 … 보통사람들이 자살한다. 연예인들의 기질적 우울증, 검찰 강압수사로 인한 모멸감, 인생 낙오자들의 캄캄한 절망감 등이 자살의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김종학 PD의 죽음은 어느 하나에 딱 맞추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 그의 성공, ‘바벨탑’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 같다.
1995년 연초 ‘모래시계’로 우리를 가슴 떨리게 했던 그는 이후 다시는 그만한 수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타 연출가로서 하늘 높이 치솟은 자신감과 야망이 그를 연출가로 안주하지 못하게 한 것 같았다. PD에서 제작자로 변신하며 기록적 제작비의 기록적 대작들을 내놓았다. 90년대 한국의 호황, 그리고 뒤이은 한류열풍 속에서 그는 한국 드라마 산업의 팽창주의를 주도했다.
드라마계의 ‘마천루’라고 할 수 있던 그의 작품들은 그러나 ‘경기 과열과 거품, 그리고 불황’의 운명을 똑같이 맞았다. 지난 2007년 그가 본격적으로 한류를 겨냥해 제작했던 ‘태왕사신기’가 대표적이다. 4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야심차게 제작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주연으로 캐스팅한 한류스타 배용준의 회당 출연료가 2억원이 넘었다니 거품도 이런 거품이 없다. 투자유치와 해외수출에도 불구하고 제작비를 건지지 못하면서 소송이 이어졌고 ‘김종학 왕국’의 몰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시대를 ‘성과사회’라고 부른다. ‘성과’가 삶의 목표가 되는 사회라는 말이다. 각자 이루어낸 성과로 평가 받고 존재감을 갖는 데 우리는 익숙하다. 1등은 1등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저마다 더 많이 성취해서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감에 누구도 편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바벨탑’을 쌓아올린 소수에게는 거대한 파이가 돌아가고 나머지 다수는 실패와 낙오의 자괴감에 시달리는데, ‘바벨탑’ 역시 누군가에 의해 곧 추월당할 것이니 성공했다고 안주할 수가 없다. 멈추면 뒤진다는 불안감이 끊임없는 질주로 내모는 살얼음판 같은 세상에서 ‘김종학’은 죽었다.
신은 왜 바벨탑을 막았을까.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끝은 없고, 탑을 쌓던 사람들은 결국 떨어져 죽을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의 심판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었을 수가 있다. 자족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성공을 향해 달려야 할 때가 있고, “이만하면 됐다” 하며 멈춰야 할 때가 있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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