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현덕 옹을 처음 만난 곳은 라이온스 클럽에서였다. 늘 베레 모자를 쓰고 이 지역 동포들의 크고 작은 행사에 빠지지 않고 카메라를 메고 나오신 분이다. 옹은 무공훈장도 여럿을 받은 영관급 전투장교였다는데도 본인은 그런 내색 전혀없이 사진만 찍으며 이 베이지역에서 조용히 사셨다.
그리고 라이온스 클럽에서는 앞치마를 두르고 노숙자 급식도 하셨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심으로 의료봉사에도 참여하셨다.
이 옹은 6.25남침 전쟁 당시 대전중학교 5학년으로 17세 나이에 혈서를 쓰고 학도병으로 지원해서 훈련 2주 만에 포항 전투에 투입되어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셨다. 그 후 이 옹은 간부 후보생을 지원하여 포병장교소위로 임관을 했고 현리전투, 백마고지 전투, 엠완고지 전투 등 6.25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여러 전투에서 포연을 뒤집어쓰고 싸웠던 역전의 용사였다.
그 유명한 현리 전투에서 당시 9사단 포병 관측 장교 이현덕 소위는 적과 직접 마주한 소총 분대의 참호에까지 가서 관측 임무를 수행하며 아군의 포 사격을 유도하였다.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의 흐름을 생생하게 목격하면서 보고했기 때문에 이소위의 직속 상관이였던 장경석 포 대대장은 후퇴를 미리 준비하였고 따라서 군단 전체가 괴멸되는 상황에서도 이소위가 소속된 포 대대는 병력을 보존하며 후퇴할 수 있었다.
얼마후 장경석 대대장이 20사단 포사령관으로 승진하면서 많은 선임 장교들을 제치고 갓 대위로 진급한 이현덕을 사단 155mm 포 대대장으로 발탁하였다.
그만큼 이현덕 대위의 성실성과 지휘 작전 능력을 신임한 것이다. 이현덕 옹이 소령 때 3군단 98 포대 대대장이 되었는데 그 때 이 소령의 포 대대가 전군(全軍)의 포병 전투력 테스트에서 일등을 하면서 당시 미 8군 사령관이던 테일러 대장에게서 "Best ofthe Army"라는 극찬을 받은바 있다.
당시 이현덕 소령의 직속상관인 군단포사령관은 박정희 준장.
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유능한 장교를 육성하고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군에서는 이현덕을 미국 육군의 초등군사반과 고등군사반 두 차례 유학을 보내는 등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시켰다. 그리고 나이 30에 중령으로 진급한 이현덕에게 오키나와의 미 정보학교에 유학까지 시켜서 정보 분야에도 경력을 쌓도록 하였다.
그러나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 장교 이현덕 중령은 뜻하지 않게 원충연 대령의 반혁명 사건에 연결이 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1965년 강제 예편되었다.
사실 당시 이 중령은 원 대령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했다.
예편은 되었지만 일단 반혁명 세력으로 찍혔으니 언제 무슨 건으로 어떻게 잡혀갈지 모르던 시절이다. 불안한마음에서 이 옹은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옛날 자기 부하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자른 박정희가 왜 그리 원망스러웠는지… 애꿎은 자신을 얽어 무고를 한 이아무개 소령이 얼마나 증오스러웠는지.. 꿈 많은 청소년 시절을 오직 전장포화에서 보낸 사람, 아는 것은 군 밖에 없던 이현덕이 미국에 와서 할 수있는 것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것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에 와서 그 고생을 하며 얻은 것은 마음의 평화이고 “지금의 나 된 것은 다만 주님의 은혜라”는 오로지의 신앙고백이였다. 그 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것, 현숙한 부인을 만나 함께 여생을 보내는 것, 아이 셋이 다 건강하게 잘 자라는 것, 이 지역 많은 사람들과 좋은 교제를 나누게 된 것, 생각하면 감사를 해야할 조건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현덕 옹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상항 연합 장로교회를 창립했다.
이현덕 옹은 미국에 와서 중학생 때부터 취미가 있었던 사진을 직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이웃 아이들에게 인기 좋은 할아버지, 베이 지역에서는 맘 좋은 사진사 아저씨가 된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 일부러 찡그리는 사람은 없다. 모두 웃으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고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다.
이현덕은 이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사진만 찍은 행복한 사진사가 되었다.
언젠가 총영사관의 요청으로 닉슨대통령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을 근접에서 촬영할 기회가 있었다. 그간 세월이 지나 미움도 잊고해서 반가운 마음에 “제가 이현덕입니다”하자 박대통령은 무심히 고개를 돌리더란다.
그러나 괘념치 않기로 했다. 이왕 과거와 화해하기로 오래 전부터 맘먹었기 때문이다.
필자의 서재에는 이현덕 옹의 작품사진이 하나 걸려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샌프란스시코에 왔을 때의 사진이다. 닉슨 대통령 부부가 옆에 있는데 육영수 여사와 함께 나란히 선 박 대통령이 어찌 그 장면에서는 눈을 감고 있다. 혹시 조금 전에 만난 자신의 군단 포사령관 시절의 중포대대장, 원충연 사건에서 강제 예편시킨 이현덕중령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이현덕 옹의 팔십 인생을 담은 자서전 출간을 축하드린다. 이 책을 통해 이현덕 옹의 오랜 아픔과 상처가 깨끗이 치유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한 이민자 이현덕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애정의 눈이 더욱 크게 떠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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