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십계명은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무자비한 정복전쟁을 펼친다.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 하였’을 정도로 잔혹한 전쟁을 이어간다.
모세의 신실한 후계자 여호수아는 십계명을 위반한 것일까.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의 해석에 따르면 ‘사람을 죽이지 말라’ 라는 금지명령에서 ‘사람’은 그 부족의 구성원만을 의미한다. 다른 종족 특히 이교도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죽이면서 여호수아가 갈등을 느낄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계선 안과 밖을 칼날같이 구분하는 인식은 고대사회 모든 종족에 보편적이었을 것이다. 외부인을 ‘사람’이 아닌 그냥 ‘적’으로 보는 인식 없이 공동체로서의 생존은 불가능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조금만 달라도 경계부터 하게 되는 우리의 무의식적 배타성은 그렇다면 고대로부터 각인된 유전적 요인이 아닐까. ‘인종편견’은 우리의 DNA에 새겨진 생존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지난 한주 생각해보았다.
17살의 흑인소년을 총으로 살해하고도 무죄로 풀려난 조지 짐머만 사건으로 미 전국이 시끌시끌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며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거세고, 그 한편에서는 분노를 빌미로 떼강도들이 약탈을 일삼고 시위대가 폭도로 변해서 4.29 폭동을 연상시키는 긴장감이 감돈다.
지난해 2월 플로리다, 샌포드에서 발생한 트레이번 마틴 피살사건은 미국사회에서 ‘검은 피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피를 토하듯 부르짖은 ‘나에게는 꿈이 있다’ 연설이 50주년을 맞지만 ‘꿈’은 아직도 미완성이라는 사실, ‘검은 피부’는 여전히 범죄나 공격성을 떠올리게 하는 위험요소라는 사실, 인종편견은 뿌리가 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짐머만 무죄평결에 대한 반응은 사건의 초점을 ‘정당방위’에 두느냐 ‘인종편견’에 두느냐에 따라 갈라진다. 플로리다 자기방어법은 자기 거주지에서 위협을 느낄 경우 총격을 가해서라도 자신을 지킬 권리를 보장한다. 이 법에 근거해 짐머만은 죄가 없다는 평결을 받았다. 그의 무죄는 합법적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법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정의가 실종되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남긴 숙제, 미국 인종차별의 현주소이다.
짐머만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것은 미국사회의 보편적 ‘인종편견’이 있어서 가능했다.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인 그가 ‘위협을 느꼈다’고 했을 때 상대가 백인이었다면 설득력이 있었을까. 흑인남성에 대한 보편적 선입관이 짐머만의 ‘정당방위’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노예의 나라,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도 흑인이고 법무장관도 흑인인 나라에서 “인종차별은 무슨 ~” 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과 제도의 개선, 전반적 인식 변화로 인종 간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서로 다른 인종의 친구, 직장동료, 이웃들이 함께 어울려 지내는 것이 미국의 일상적 모습이다. 잘 아는 사람들, 이성적 판단이 가능한 조건에서 인종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낯선 공간에서 낯선 상대와 마주칠 때, 이성 보다 동물적 본능이 작동될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떤가. DNA에 새겨진 경계심, 인종적 선입관이 고개를 든다.
어둑어둑한 거리에서 흑인남성이 다가오면 긴장부터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누군가 자전거 잠금장치를 부수려고 할 때 그 사람이 흑인이면 경찰에 신고를 하고, 백인이면 그냥 지나치거나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하다. 흑인남성과 백인남성 사진을 보여주며 범죄자와 교사를 가려내라고 하자 아이들은 흑인을 범죄자, 백인을 교사라고 답했다. 흑인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 백인은 연방청사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였다.
흑인이 받는 인종차별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중 증오와 분노에 찬 집단이 있으면 그 사회는 불안하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어 치르는 대가 중의 하나가 이번 짐머만 사건이다. 한 사람은 목숨을 잃었고 다른 사람은 평생 남의 눈을 피해 살아야 할 것이다. 뿌리 깊은 인종편견, 미국사회가 풀어야 할 크나 큰 숙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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