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임(논설위원)
날씨도 더운데 세계 곳곳에서 사건ㆍ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시아나기 착륙사고, 퀘벡의 열차탈선사고, 중국과 일본ㆍ캐나다의 폭우와 폭염, 중동의 분쟁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군부 지원의 이집트 과도정부는 10일 축출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의장에 대해 체포명령을 내리고 무슬림형제단은 투쟁의지를 보여 유혈 사태 재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또 터키는 반정부 시위 중 괴한에게 폭행당한 10대가 치료 중 숨졌고 라마단 첫날인 9일 정부와 반정부측은 따로 따로 행사를 치르는 등 아직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터키의 이스탄불 밤거리에 불 켜진 까페 풍경을 얼마나 아름답게 묘사했는 지 언젠가 이스탄불에 가면 그곳에 가보고 싶게 만들었다. 카이로 시내 이집트 박물관은 지난 2011년 무브라크 대통령을 몰아내는 혼란을 틈타 시위대가 유물을 훔쳐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민중봉기 열풍 속에 시위 중인 카이로나 이스탄불 시민들 안전은 물론 문화유적이 훼손될 까 염려된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추억을 만들고 사람이 사라져도 역사의 흔적은 남아 있어 각 도시마다 색다른 냄새, 향기가 있다.
한때 가장 활발한 문명의 중심지이고 전성기였던 도시의 오늘날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에게 운명이 있듯 도시에게도 운명이란 것이 있지 싶다. 1920년대 뉴욕과 파리를 무대로 한 영화를 얼마 전 보았다. 스콧 피츠 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가 바즈 루어만 감독,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 캐리 멀리건 주연으로 지난 5월 개봉됐다.
주가는 치솟고 월가는 대호황이며 도시는 매일 밤 수많은 파티로 먹고 즐기던 시절, 아메리칸 드림의 성취와 좌절, 사랑의 안타까움과 열정을 보러갔는데 쓸데없이 화려한 쇼걸의 무대, 후덕해진 중년남자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를 보고 나왔다. 그래도 1920년대 뉴욕 풍경을 보는 재미가 괜찮았다.
금색 선풍기가 돌아가는 맨하탄 플라자호텔, 퀸즈 지상 지하철과 도로변, ‘재의 계곡’ 기찻길 옆(현재 메도우 코로나팍), 개츠비는 그곳을 오간다. 롱아일랜드 웨스트 에그(킹스 포인트 지역)의 개츠비 집과 맨하셋 만을 사이에 둔 이스트 에그(샌즈 포인트 지역)의 데이지 집을 찾아보고 싶다. (이는 영화가 아닌 소설의 힘이다.)
그리고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세기 초반 파리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인 작가 길 펜더(오웬 윌슨)는 할리웃에서 각본가로 성공했지만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는 밤길을 걷다가 파리 골목을 헤매고 한 모퉁이 계단에 주저앉는데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더니 오래된 푸조 한 대가 다가온다. 과거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1920년대 파리의 한 파티장. 그는 꿈에 그리던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난다.
장콕토가 주최한 파티장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쓴 작가 피츠 제럴드를 만나고 헤밍웨이, 고갱, 피카소, 달리, 툴루즈 로트렉 등 세계적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 황홀하지 않은가.
1920년대 서울은 어떨까. 1919년 3.1운동 후 대대적인 민족저항운동에 일제는 잠시 식민폭압정치를 벗어나 일종의 문화 정치를 시작했다. 언론ㆍ출판시대 개막으로 신문과 문학동인지, 잡지가 생기고 사회주의 사상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다. 사회주의자든 민족주의자든 식민지하의 조국은 하나였고 공공의 적은 일제였고 조국 해방이란 같은 꿈을 꾸었다.
같은 꿈을 꾸던 시기, 왜 두 개의 사상으로 갈라졌는지, 치열하게 다투다가도 봉합의 기회는 있었을 텐데, 분단 시대를 사는 지금, 그 근원부터 알고 싶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1920년대 파리ㆍ뉴욕ㆍ서울을 다녀오고 싶다.
어떤 이는 인터넷 강국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서울의 전성기가 지금이라 한다. 우리의, 나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누구에게나 과거 자신이 가장 빛나던 시절, 전성기가 있다. 그러나 지금 처한 현실이 구차하고 어려워도 이 또한 과거가 될 것이고 언젠가는 이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다. 그러면 지금 사는 도시인 뉴욕, 살고 있는 나, 가까이 있는 것이 전성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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