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에도 캘리포니아는 동성 간 결혼 이슈로 시끌시끌했다. 동성 간 결혼을 금지한 프로포지션 22가 2000년에 통과된 후 그 위헌 여부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수년간 이어졌다.
‘동성 결혼을 막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한 대부분의 한인교회들은 서명운동을 전개하며 프로포지션 22 지지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내가 알던 한 주부도 당시 자신이 참석하는 교회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신앙노선이 보수적인 그에게 동성결혼 반대는 두 번 다시 생각할 것도 없는 기독교인의 의무였다.
그런 그를 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그는 자기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 아들이 대학에 간 후 소위 커밍아웃을 해서 또래 친구들은 알고 있었지만 부모에게는 쉬쉬 하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내 아이들을 통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주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인정 판결들을 내리는 것을 보며 그 주부를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아들의 성적 정체성을 알고 있을 그는 이런 판결 앞에서 어떤 심정일까. 아들이 살아갈 삶을 생각하며 ‘휴~’ 안도를 했을까 아니면 아들이 ‘용서받지 못할 죄인들’인 그들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을까.
물길의 흐름을 보면 냇물이 어느 강으로 유입될 지 알 수 있듯이 시대의 조류가 앞날을 보여준다. 동성애자들에게 굳게 잠겨있던 결혼의 빗장이 2000년대 들어서며 헐거워지더니 지난 1~2년 사이 빠르게 문이 열리고 있다. 2000년 버몬트 주가 미국 최초로 동성 간 시민결합을 인정하면서 물꼬를 튼 후 지금 미국에서는 12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했다. 이번 연방대법의 결정으로 동성결혼 금지법인 프로포지션 8이 효력을 상실하면서 캘리포니아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동성결혼 합법화는 이제 막아내기 어려운 도도한 흐름을 형성했다.
결혼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결합’이라는 오랜 전통의 종교적 도덕적 법적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19세기에는 노예가, 20세기에는 유색인종과 여성이 인간으로서의 평등을 인정받은 데 이어 21세기에는 성 소수자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들이 평등권을 인정받아 마침내 얻으려는 것은 남들처럼 결혼할 권리, 동성결혼 합법화가 21세기 민권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모든 불평등의 역사는 ‘다름’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우리와 다른 그들을 다름에도 불구하고 포용하느냐, 다름에 부정적 의미를 실어 배척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소수인의 삶의 질은 달라진다. 백인주인들의 눈에 아프리카 흑인노예는 가축과 다름없었고, 전통적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 그리고 백인주류사회에서 유색인종은 여러 등급 낮은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200년 전 노예해방을 주장하면 죽임을 당하고, 100년 전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하면 감옥에 가던 불평등의 시대는 지나갔다. 역사는 진화했다.
이제 동성결혼이 우리 앞에 숙제로 던져졌다. 보수 기독교계는 동성결혼 합법화 추세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비롯, 신구약 여러 곳에서 동성애를 추악한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이라는 점에서 동성애자들을 포용하는 교회들도 상당수이다.
전반적 여론은 점점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우리와 다른 그들을 어떻게 보느냐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다름’ 자체를 보는 대신 ‘다름’으로 인해서 겪는 아픔을 보는 눈이 생긴 결과이다.
강경보수 딕 체니 전 부통령이 그답지 않게 진보적 견해를 가진 이슈가 있다. 바로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다. 2004년 대선 캠페인 당시 재선에 나선 부시와 체니 팀은 보수 기독교 표밭을 겨냥해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면서 동성결혼 반대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지금 그는 동성결혼을 지지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결합을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40대 중반 그의 딸이 동성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실이 그의 시각을 바꾸었을 것이다. 딸의 행복을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동성결혼 지지는 동성결혼 찬양이 아니다. 어떤 유전적 연유로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그들도 단지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그들의 ‘다름’을 볼 것인가 인간으로서의 ‘같음’을 볼 것인가. 역사는 ‘같음’을 보라고 말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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