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유월 초부터 집안에 졸업가운이 눈에 뜨이고 졸업식 입장권과 졸업관련 팸플릿이 책상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정말 졸업을 하는지 아니면 가운만 입고 쇼를 하는 건지 속으로 드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졸업식날 안내책자의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이름이 불려져 단상에서 졸업장을 받아들자 그제야 정말 졸업을 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들은 처음 대학에 입학하고 일년이 채 못돼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비싼 학비가 아까울 뿐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자기가 원하는 앤더슨 비즈니스 스쿨에 가기 어려우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복싱을 본격적으로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대학 내의 복싱클럽에 가입을 하였다. 매 주마다 양 손에 감는 길고긴 테이프를 빨아서 일일이 펴서 감아주었다. 어느 날 킥 복싱이 배우고 싶으니 킥복싱의 본산지인 태국의 산 속 무에타이 도장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하였다. 어느 부모가 아들이 산 속에서 킥복싱을 배우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을 선선히 허락하겠는가. 참으로 많이도 싸우고 얼렀다.
“지나고 보니 여태 경험한 인생살이 중에서 대학생활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런 좋은 시간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며 아이를 타일렀다. 하다하다 안돼서 “그럼 대학을 졸업하면 가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도 당장 지금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녀석이 언제 가버리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 졸이는 나날을 보냈었다. 아들은 책도 복싱선수들의 자서전을 즐겨 읽었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이 저렇게도 가고 싶어하는 태국의 무에타이 도장이 어떤 곳인지 인터넷으로 상세하게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기왕이면 안전하고 프로그램이 좋은 곳으로 가는 것으로 아들과 협상을 할 준비도 조금씩 했었다. 우리 부부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음을 작정했을 때 신기하게도 아들은 무에타이 도장 이야기를 더 이상 거세게 꺼내지 않았다.
아들이 공부에 열심을 내지 않는 것 같았지만 학교에 다녀주는 것만도 고마워 성적표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연년생 큰아들과 딸이 대학 다닐 때에는 인터넷으로 그 아이들의 성적표를 마치 우리 자신의 성적표 체크하듯 했다. 학기 중간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학기말 시험은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받으라고 아이들을 닦달하곤 했었다.
늦둥이 막내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고 엉뚱한 생각을 잘 하는지라 성적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을 뿐더러 로그인하는 번호도 묻지 않았다. 수업에 들어가 학점을 따고 졸업만 해주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4년간 아름답고 멋진 캠퍼스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교제하면서 지낸 여유로운 시간들이 언제 다시 올 것인가. 둘러보면 대학 캠퍼스처럼 멋지고 아름답고 낭만이 서린 곳이 없다. 말리부 산자락과 베벌리힐스 산 사이에 있는 캠퍼스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구릉과 넓게 펼쳐진 계단들, 연륜 쌓인 키 큰 나무들, 분수와 화려한 꽃으로 잘 꾸며진 정원, 한창 도약하는 아이들의 꿈만큼이나 광활한 대지 위의 웅장하고 고풍스럽고 수려한 건축물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한번 씩 아이들은 일탈을 원한다. 딸의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딸은 스페인에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공부하러 갔었다. 처음 한두 달은 적응이 잘 되지 않아 학비전액을 손해보더라도 미국으로 되돌아오겠다고 자주 전화로 울면서 말했다. 그때마다 “조금만 참아보렴. 한 학기 금방 간다”고 타일렀다.
한 학기를 마칠 즈음이 되자 딸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스페인에서 영어를 가르치면 학비와 생활비를 벌 수 있으니까 스페인에서 좀 더 공부하며 살다가 미국으로 돌아가면 안되겠느냐고 졸라대었다. 우리부부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다니던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나서 그때도 스페인에 가고 싶으면 가라고 했다. 아이들이 멀리 떨어져 살면 우리가 적절하게 조언하고 힘겨울 때 돕기 힘들고 우리 또한 아이들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가족 간에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살면서 많이 경험한 탓이다.
막내는 졸업을 한 후 부쩍 의젓해진 듯하다. 아이들에게도 나이는 헛먹는 것이 아니다. 시행착오를 겪은 후 조금씩 성숙해가는 과정에 있음을 안다. 막내가 멋진 어른으로 성장해가기를 기대하며 아이의 앞날을 위한 축복기도를 매일매일 빼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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