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이자 저술가로 유명한 유대교 랍비 해롤드 커슈너는 1966년 심각한 신앙적 고민에 빠졌다. 세 돌 갓 지난 아들이 조로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노화가 급속히 진행돼 어린나이에 노인이 되고 10대 초에 수명이 다하는 희귀한 질병이라고 했다.
30대 초반의 새파란 랍비로서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신학적 갈등에 부딪쳤다. 남들보다 선하면 선했지 결코 악하게 살지 않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혹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죄가 있다 해도 그 벌이 왜 죄없는 어린 아들에게 가야하는가,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사랑과 공의의 신이 맞는 걸까… 회의는 꼬리를 물었다.
1977년 14살의 아들을 떠나보낸 후 그가 쓴 책이 80년대 베스트셀러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때’였다. ‘왜 선한사람에게 …’로 시작된 ‘why’의 질문은 아들과 함께한 10여년의 가슴 저린 시간을 통과한 후 ‘… 일어날 때’ 즉 ‘when’으로 바뀌었다. 비극은 선한 사람, 악한 사람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신과 무관하며 신의 개입은 사건이 일어난 후 이를 감당하게 하는 힘으로써 드러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왜 이런 일이 …’ 라는 절규를 뼛속 깊이 체험한 사람으로 빌 펠케(65)라는 사형반대 운동가가 있다. 미국의 최연소 사형수였던 폴라 쿠퍼(43)가 지난 17일 석방되면서 함께 주목받은 인물이다.
빌과 쿠퍼의 인연은 독특하다. 그는 쿠퍼가 살해한 할머니의 손자이자 쿠퍼의 감형을 앞장서서 도운 은인이다. 언론들은 ‘위대한 용서’의 산증인으로 그를 소개했다.
온화하고 자애롭던 할머니가 피투성이 사체로 발견된 사건은 빌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1985년 당시 15살의 쿠퍼는 또래 친구 3명과 함께 사건을 저지른 후 이듬해 사형선고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성경 가르치는 것을 소명으로 삼던 인자한 할머니를 칼로 33차례나 찔러 숨지게 한 소녀의 사형은 당연하다고 빌은 판단했다.
그에게 ‘용서’라는 낯선 느낌이 찾아든 것은 그로부터 4달이 지난 후였다. 철강회사 크레인 기사였던 그는 어느날 지상 50피트 높이의 크레인에 홀로 앉아 할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의 신앙심과 사랑을 떠올리던 그는 할머니가 16살 소녀의 사형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데 문득 생각이 미쳤다. 모든 걸 용서하던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도 소녀를 용서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쿠퍼에 대해 사랑과 연민을 갖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고 그 결과 용서가 가능했다고 그는 고백했다.
빌은 먼저 쿠퍼에게 편지를 썼다.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학대 속에 자라 심성이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쿠퍼는 그의 선의를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20여년 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빌의 인생도 변하고 쿠퍼의 인생도 변했다.
분노를 넘어선 빌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살자 가족단체를 이끄는 한편 사형제 폐지운동에 앞장서는 인권운동가가 되었다. 삶에 대해 희망이 없던 쿠퍼는 감옥에서 고교과정을 마치고 대학학위까지 받으며 모범적 수형생활을 한 덕분에 조기 석방되었다.
‘용서’를 가장 잘 실천하는 사람들은 아미쉬 교도들이다. 문명을 거부하고 전통적 생활양식을 고집하는 아미쉬 공동체는 용서를 신앙의 의무로 삼는다. 주기도문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를 그대로 따른다.
지난 2006년 가을 펜실베니아의 아미쉬 마을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다. 괴한이 나타나 여자아이들 10명에게 총을 쏘아대 5명이 사망했다. 이어 자살한 범인은 인근에 사는 우유배달트럭 운전기사였다. 늘 평온하던 아미쉬 마을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사건이었다.
당시 아미쉬 교도들은 범인의 집을 찾아가 그 아내와 가족들을 위로했고 살인범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이어 남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성금까지 모아 전달했다. 슬픔이 아무리 깊어도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 아미쉬의 신앙전통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용서’가 안 돼서 겪는 고통이 많다. 미움과 분노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고 감정의 죄수로 사는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용서는 가장 어려운 것, 하지만 가장 경제적인 것이라고 한다. ‘용서’하는 순간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얻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분노가 사라지고 상처가 치유되니 심신의 건강이 좋아지고 틀어졌던 관계들이 회복되며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린다. ‘왜 이런 일이…’ ‘네가 어떻게…’에서 벗어나 ‘용서’에 이르면 받는 상이 크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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