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쯤 전 프린스턴 대학신문에 한 동문이 보낸 글이 실렸다. 1973년 졸업생인 수잔 패튼이라는 여성이 ‘프린스턴의 젊은 여성들에게 주는 충고’라는 글을 기고했다. 60대의 이 대선배는 ‘너희들이 정말로 알아야 할 것, 하지만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것’을 딸 같은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학 재학 중에 남자를 잡아라, 신랑감을 찾으라는 것이다. 글의 요지는 이렇다.
어떻게 하면 직업적으로 성공할 것인가, 유리천장을 깰 것인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것인가에 관한 충고가 넘쳐난다. 그런 건 머리 좋고 교육 잘 받은 프린스턴 학생이라면 얼마든지 감당해낼 수 있다. 그보다 너희들의 미래와 행복은 어떤 남자와 결혼하느냐에 주로 달려있는데 너희 수준에 맞는 남성들이 지금처럼 주위에 많은 때가 없다. 그러니 졸업하기 전에 캠퍼스에서 남편을 찾아라.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는 사실도 명심하라. 4학년이 되면 동급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이 어린 남성들일 테니 말이다.
똑똑한 딸을 둔 한인엄마들이 손뼉을 치며 반가워할 충고이다. 명문대학 졸업 후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딸,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인데 서른 넘고 30대 중반이 되도록 미혼인 딸을 둔 엄마라면 구구절절 공감할 말이다. “진즉에 저런 충고를 했어야 했는데 …” 하며 후회막급인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많은 부모의 공감을 얻었을 법한 위의 충고는 그런데 칭찬은커녕 집중포화를 맞았다. 교내신문에 실린 내용이 외부에 알려진 것도 그 글에 대한 거센 비난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쇄도한 때문이었다. 여성의 삶의 핵심이 ‘결혼’이라니 시대착오적이다, 평균 초혼연령이 27~28세인데 20 전후에 남편을 찾으라니 말이 되는가, 신랑감 찾으러 대학 가라는 식이다, 연하면 남편이 될 수 없다니 어느 시대 사고방식인가, 수준이 맞아야 결혼할 수 있다니 그렇게 편협한 시각이 어디 있나 … 비난은 줄을 이었다.
사회가, 여성이, 결혼과 가정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1973년 졸업생은 간과했다. 나이든 학벌이든 수입이든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게 ‘정상’이며 그래서 여성은 남편 그늘에 있어야 행복하다는 가부장적 수직의 구도가 깨어지고 있다.
우선 결혼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라졌다. 성인남녀로서 의무라기보다 개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전국건강통계 센터가 최근 15~44세 여성 1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거의 절반(48%)은 동거로 한 지붕 밑에 산다. 결혼해서 커플로 사는 여성은 23%에 불과하다. 동거가 훨씬 보편화한 것이다.
‘남편의 그늘’도 희미한 옛 그림자가 되고 있다. 퓨 연구센터가 지난 29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여성이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가정이 급속히 늘고 있다. 18세 미만 자녀를 둔 가구 중 여성이 생계를 주로 혹은 전적으로 책임지는 케이스가 40%에 달한다. 미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1960년 이후 4배가 뛰어오른 수치이다.
남성은 미모와 젊음, 여성은 부와 지위를 보고 배우자를 고른다는 이론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남성이 예쁜 여성, 여성이 돈 많은 남성에게 끌리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생물학적 현상이라고 주장해왔다. 생식과 출산에서 단 몇 분 투자하면 그만인 남성은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에 여성에게서 다산의 징후를 찾았고 그것이 젊음과 아름다움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아이를 출산하고 키워야 하는 여성은 아이 양육에 유리한 배우자를 찾게 되면서 힘세고 가진 것 많은 남성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력과 지위가 상승한 지금 이 이론도 퇴색하고 있다. 퓨 연구센터 보고서에 의하면 결혼한 부부 네 커플 중 한 커플은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많이 번다. 2011년 기준 신혼부부들만을 대상으로 하면 세 커플 중 한 커플 꼴로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번다. 여성이 남성의 경제력에 끌려 결혼한다고 일반화할 수가 없게 되었다. 대학 입학과 졸업, 전문직 진출에서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는 것이 추세이고 보면 앞으로 돈 잘 버는 아내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남편 그늘에서 마냥 평안하던 시대는 끝났다. 현실은 그러한데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아내가 돈 잘 버는 가정에서 의외로 부부갈등이 잦다고 한다. 남편은 가장으로 체면이 서지 않는 것 같아 예민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자존심 건드릴 까 조심하느라 이중삼중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부부가 일심동체라면 어느 쪽이 돈을 더 잘 벌든 무슨 상관인가. 남편이 아내의 돈에 편안해질 때 진짜 남녀평등이 가능하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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