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예년에 비해 비가 잦았다. 잔디와 나무에 주는 물을 아낄 수 있었다. 봄마다 올해처럼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일에는 나쁜 것도 함께 따라다닌다. 잦은 비로 길가의 가로수가 무성하다 싶더니 사고가 났다. 수분을 넉넉히 흡수한 나무뿌리가 기운이 뻗쳐서 하수구를 침범했다. 하수구가 막히니 하수가 집안으로 밀려들어 왔다. 보험회사에서 와서 복구하는 절차가 여간 복잡하지 않다. 지금도 집안은 공사 중이다.
일층의 화장실 바닥과 거실 바닥을 다시 깔아야 되니 눈만 뜨면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어떻게 새로 해 볼 것인가 궁리한다. 자꾸 한국의 여동생이 사는 집이 떠오른다. 동생은 새 아파트로만 옮겨 다니면서 살아서 내가 한국에 갈 때 마다 사는 집이 달랐다. 동생이 사는 대전은 서울보다 집값이 저렴한 편이라 옮겨 다니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래도 부지런해야 그렇게 할 수 있다.
딸과 함께 2007년에 갔을 때 들른 집도 새 아파트였다. 실내의 적당한 장소에 몇 개의 화분이 자리했고 가구는 침대, 텔레비전을 올려둔 중국제 앤틱 나무 캐비넷과 3인용 소파, 식탁, 책상과 책장, 작은 방의 조그만 자개장이 모두였다. 가구는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만 갖추었다. 딸은 한번씩 집 장식에 관한 이야기기 나올 때마다 ‘난 이모처럼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달 한국에 가서 본 아파트도 이제 갓 지은 새 아파트였다. 그 사이에 이사했던 집도 무척 최신형의 새 집이었다고 들었다. 이번 집은 49층에 위치해 전망이 무척 좋아서 또 이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실 오른편 창으로는 첩첩의 산을 배경으로 S자 강이 흐르고 왼편 창으로는 도심의 고속도로와 고속철이 지나가는, 도심과 시골의 풍경을 함께 가진 전망 좋은 집이었다. 지난겨울 눈 올 때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고 한다.
60평이 넘는 실내면적에 가구는 예전과 같은 데 자개장은 제외됐다. 여러 마리의 예쁜 박새가 새겨진 아름다운 자개 장롱을 버리다니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지. 너무 예뻐서 갖고 싶었지만 동생도 내 마음과 같을 거라서 차마 욕심이 난다고 말조차 꺼낼 수 없었던 그 자개농을 버렸다. 제법 값이 나가는 액자도 버렸는지 안 보인다. 대신 화분이 두세 개 늘어났다. 가구가 없어서 단순하고 깨끗하다. 적절한 컬러배합으로 실내가 무척 아름답다.
욕실의 바닥부터 천정까지, 집안의 벽과 바닥, 문짝, 냉장고 등 자기가 생각하는 비례와 컬러, 자재를 사용하기 위해 돈이 과하게 들더라고 모두 뜯어내고 다시 고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집안에 앉았을 때 무척 편안했고 아름다웠다. 집안 구석구석이 눈에 쏙쏙 들어오고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부지런함, 미에 대한 감수성,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 실행력을 가진 여동생이 무척 대견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동생은 나와 1년8개월 터울을 가진 터라 어릴 때 엄마가 꼭 같은 옷을 사주어서 남들이 쌍둥이 지나간다고 수군댔었다. 이처럼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성격은 정반대이다. 나와 다른 동생의 생각을 존중하면서, 흠모하면서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경우는 이렇다. 20여년 전 한번 산 집을 떠나지 못하고 잡혀서 지금까지 산다. 물건하나를 사더라도 버리지 못한다. 대문을 열면 마주치는 고흐의 아이리스 그림이 있다. 서점 운영할 때 굴러다니던 금빛 테두리 포스터 액자에다가 1달러짜리 포장지의 아이리스 그림을 넣어서 걸었다. 그 그림이 15년 전부터 집 입구에 그대로 걸려있다. 거실의 소파는 천이 찢겨져 새로 사고 헌 소파는 빨간 담요를 핀으로 고정시켜 씌었다. 식당 책꽂이 옆에 옮겨 놓고 비스듬히 누워 책을 보는 데 사용한다. 아까워서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고, 정들어 차마 버리지 못하고, 게을러서 버리지 못하고 산다.
어질러진 집안에 쪼그려 앉아 갈등을 하고 있다. 이참에 다 버릴 것인가. 아니면 타고 난 천성대로 살 것인가. 대리석이 유행이고 부엌의 새 캐비넷도 유행이지만 멀쩡한 것을 뜯어내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부엌의 골동품 스토브도 아직 고장이 나지 않으니 버릴 수가 없다. 자재를 낭비하는 과소비도 내 취향이 아니다. 구닥다리의 가재도구들을 적당하게 배치하고 이곳저곳의 얼룩을 닦아내고 그렇게 사는 것이 내 스타일이다. 아무래도 나는 나답게 살아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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