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후배의 집 벽난로 위에 고급스런 나무상자가 하나 놓여졌다고 한다. 금박으로 이름이 새겨진 그 상자는 납골함이다. 후배의 남편이 11년 간 동거하며 동락한 고양이가 죽자 화장 후 유골을 집안에 보관하기로 했다. 고양이의 사인은 심장질환. 고양이가 신장암에 걸린 사실이 확인돼 암 덩어리 제거 수술까지는 잘 마쳤는데 이후 심장병이 심해져서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후배는 고양이에 대한 남편의 극진한 사랑과 그 과정에서 지출된 엄청난 의료비용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놀라운 것은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의 반응이었다. 애완동물에 대해 특별히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이야기에 별로 놀라워하지 않았다. 애완동물이 암에 걸리면 사람처럼 치료를 받게 하고, 그러다 죽으면 역시 사람처럼 화장하는 일이 어느새 예삿일이 되었다.
한국이 못 살던 시절 애완동물에 대한 선진국 국민들의 유난스런 행동은 단골 해외토픽 감이었다. ‘고양이 납골함’ 이야기를 그때 들었다면 필시 ‘세상에 이런 일이…’ 하며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1990년대 이웃에 백인 여교사가 살았는데, 싱글인 그 여성은 개 두 마리를 자식처럼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마리가 암에 걸리자 그는 주저 없이 한번에 100달러씩 하는 방사선 치료를 받게 했다. 20년 전 당시만 해도 ‘암 걸린 개의 방사선 치료’ 이야기를 하면 한국 사람들은 별난 일로 여겼다. “개가 암에 걸리다니, 개에게 방사선 치료라니, 미국사람들의 개 사랑은 유별나다”고 한마디씩 했다.
지금은 가히 애완동물의 황금시대이다. 애완동물이 보편적으로 이처럼 대우받던 때가 일찍이 없었다. 해외토픽 감의 유별난 케이스도 여전히 있다. 미국의 호텔업계 거부였던 리오나 헴슬리는 지난 2007년 사망하면서 애완견에게 1,200만 달러를 유산으로 남겼다. 다이아몬드 박힌 개 목걸이를 하고, 헴슬리 호텔 주방장이 정성껏 만들어 은식기나 차이나에 담아낸 음식을 먹으며,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고 산 이 개는 연간 10만 달러씩 쓰며 호화생활을 하다가 죽었다.
개를 구하려다 사람이 죽는 사건들도 일어난다. 지난해 8월 매서추세츠의 60대 부부는 애완견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밤에 호수에서 보트놀이를 하던 중 개가 호수에 빠지자 남편이 개를 구하려 뛰어들었고, 남편이 물속에서 어쩔 줄 몰라 하자 아내가 수영도 못하면서 뛰어들었다. 결국 부부는 죽고 개만 살아남았다. 이어 11월에는 북가주 유레카 해변에서 50대 부부와 10대 아들이 사망했다. 개가 파도에 휩쓸리자 아들이 개를 구하려 달려갔고 아들을 구하려 부부가 달려갔다가 세 명 모두 목숨을 잃었다.
애완동물에 대한 유난스러움에서 이제는 한국도 뒤지지 않는다. 한국에는 개 한방병원이 있어서 진맥하고 보약도 짓는다고 한다. 애완동물 전문 장의사도 생겼다. 개나 고양이가 죽으면 수의 입혀 고급 오동나무 관에 눕혀 입관식하고 화장한 후 화장 증명서를 발급한다. 유골함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애완동물 납골당에 보관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말하는 것이 있다. 애완동물은 더 이상 그냥 ‘동물’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더 이상 ‘애완동물’이 아니라 ‘반려동물’로 부른다. 기본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져서 생긴 현상이다. 먹고 살만 하니 집안에서 기르는 동물에 대해서도 넉넉하게 챙길 여유가 생긴 것이다. 한편 그 모든 관심은 애초에 사람에게 쏠렸어야 하는 게 아닌 가 생각하면 우리 현대인들의 고독한 자화상이 나온다.
애완동물이 가족의 일원으로 승격한 배경은 산업사회의 도시화와 핵가족화이다. 대가족이 한 울타리에 모여살고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서로 알고 지내던 과거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외로울 틈이 없었다. 보듬고 감싸주는 존재가 늘 곁에 있었다. 도시에서 핵가족으로 생활하면서 모두는 모두에게 낯선 존재들이 되었다. 현관문 닫으면 외부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다.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들만 챙기는 가족 이기주의가 깊어지고, 그 격리된 공간에서 애완동물은 동물 이상의 역할을 한다. 개가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고 고양이가 따뜻한 체온을 주고받는 대상이 된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는 특히 애완동물이 정서적 육체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애완동물이 주는 사랑은 특별하다. 아무리 섭섭하게 해도 사랑을 멈추는 법이 없다. 그런 사랑을 우리가 어디에서 받아보겠는가. 하지만 개는 개로, 고양이는 고양이로 딱 그만큼만 좋아하자.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안을 받는 것이 맞다. 애완동물이 너무 대접받는 사회는 씁쓸한 사회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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