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a man in the morning hear the Way, he may die in the evening without regret.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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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중학생 때 처음 들었던 공자님 말씀입니다.
조선 땅 우리 선조들은 저보다 더 어릴 적 동네 서당에서열심히 익히고 외웠을 문장입니다. 그리고, 지천명을 이미 넘은 오늘, 더욱 선명하게 다가오는 칠언(七言)입니다.
조문도/석사가의!
아침에 들었다면 저녁에 죽은들 어쩌랴는 그 도(道).
What is the Way? 그 도(道)란 과연 무엇일까요? 문도(聞道), 굳이 ‘도를 듣는다’고 표현한 이유는 뭘까요? Hearing the Way? 깨친다 또는 알다는 표현 대신 그저 ‘듣는다’는 문(聞)을 도(道) 앞에 새긴 까닭은 뭘까요?조문도(朝聞道)하면 석사(夕死)라도 가의(可矣)라!아침에 이미 도를 들었거늘 저녁에 죽는다 한들 무슨대수겠는가!
다석(多夕) 류영모 어른의 마침보람 제자 박영호는 명저 "다석사상으로 본 유교"에서 이렇게 깨우치십니다.
"사람이 늙어서 허무를 느끼면 이미 인생을 잘못산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슬픔에 젖으면 일생을 그릇되게 산 것이다. 늙음의 준비를 하고 죽음의 준비를 하면서 산 이는 늙어도 허무를 느끼지 않으며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유비무환(有備無患) 만이 아니라 유비무비(有備無悲)이다. 이렇게 일생을 산 이가 예수/석가/공자/노자 같은 성인들이다. 그들은 죽음을 겉으로는 의젓하게, 속으로는 기쁨으로 맞이했다.” [359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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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a man in the morning hear the Way, he may die in the evening without regret.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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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선(儒佛仙)을 깊게 관조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고하느님과 항상 부자유친(父子有親)하는 삶을 사셨던 다석 류영모 어른. 조선 땅 조선 사람의 기개와 정신으로당당하게 홍익인간(弘益人間)하며 사셨던 다석 어른의유일한 마침보람 제자 박영호 선생의 유교(儒敎) 풀이를읽는 중입니다.
"좀처럼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가 공자였다. 공자는 신중한 사람이다. 이(利)로운 것에 대해서, 괴이한 것에 대해서, 힘센 것에 대해서, 전쟁에 대해서, 귀신에 대해서도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말했다." 사후세계니 전생이니 윤회니 하는 형이상학의 구름잡는 수사는 애써 우회하던 공자님. 그 분이 몸소 ‘죽어도 좋다’고 말씀하신 그 도(道)의 정체를 다석 어른이나 제자 박영호는 과연 어떻게 풀고 있을까요?
노장(老莊)의 도(道)와 비슷하지만, 거기에 예수와 붓다의 도(道)까지 잘 가미된 풀이가 점입가경 (漸入佳境)입니다.
"도를 듣는다는 것은 석가가 도를 깨닫는다는 말과 같다.
듣는다거나 깨닫는다거나 모르던 것을 아는 것은 마찬가지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은 하느님이 알게해 준 것이다.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이 내 의식을 점령함으로 알게되기 때문이다."
아, 이런 풀이를 함께 할 사람이 많지 않음을 익히 아는 터입니다. ‘깨달음은 하느님의 은총’이란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이 귀한 것이 바로 21세기를 갓 사는 요즈음 지구촌 인류의 모습이 아니던가요?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의절묘한 ‘줄탁동시(啐啄同時)’를 함의하는 풀이에 어찌쾌재를 부르지 않을 수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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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a man in the morning hear the Way, he may die in the evening without regret.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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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어른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풀면, ‘제나가 죽어 얼나로 솟남’입니다. 거짓생명인 ‘제나’[ego]가 죽은 자리에 형형히 솟아오른 진짜 생명의 참나인 ‘얼나’를 깨닫는 게 ‘문도(聞道)’의 정체인 것입니다. 저녁에 죽어도 좋을 조문도(朝聞道)의 핵심은 바로 ‘거듭남’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밤에 몰래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간절히 전한 복음(福音) 또한 바로 이 말씀 아니던가요?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아니하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again, he cannot see the kingdom of God. [요한 3:3]
다석의 보람제자 박영호 어른은 이렇게 풀고 계십니다.
"내[自我] 의식을 점령한 성령이 참나[眞我]를 깨닫게했는데 아침에 듣고 저녁에 죽은들 어떠하겠는가?참 생명을 얻었으면 거짓 생명은 없어져도 좋다는 것이’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의)’와 같은 말이다."그리고, 마침내 당당한 일갈로 공자님 말씀을 이렇게정리합니다. "참나는 얼나로, 나지 않고 죽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 No birth, no death! 나지도 죽지도 않는 영생의 참나인 ‘얼나’를 깨치고들었다면, 저녁에 죽는다 해도 그건 이미 죽는 게아니라는 밀의(密意) 또한 놓치지 않으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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