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의원에 다니면서 한의학 용어를 하나 배웠다. 불통즉통(不通則痛),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이다. 우리 몸을 순환하는 기와 혈이 순리대로 잘 통하면 아플 일이 없고 어딘가 막혀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원리,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則不痛 不通則痛)’은 한의학에서 기본이 되는 원리라고 한다.
‘불통즉통’인 것은 우리의 몸만이 아니다. 모든 조직이 ‘불통즉통’이니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항상 문제가 된다. 한인가정상담소가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상담통계를 보면 의사소통 문제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이 1위를 차지한다. 같은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데도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상처를 받곤 한다. 가정폭력, 부부의 이혼, 자녀와의 충돌 등은 근원을 짚어보면 ‘불통’이다.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 먹고 사는 가족들이 왜 이렇게 대화가 안 되는 것일까. 가족이면서도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 먹는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한국의 조사를 보면 가족과의 평균 저녁식사 횟수가 지난 1990년 주 4회였던 것이 2011년 주 2회로 줄었다. 부부 맞벌이가 보편화하고 자녀들은 자율학습이며 학원에 매여 가족들이 같은 시간에 한 자리에 둘러앉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자영업이 많은 미주한인사회에서는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다. 부모가 가게에서 늦게 돌아오니 아이들끼리 밥을 챙겨먹는 가정들이 적지 않다. 밥을 따로 먹는 자체보다 그만큼 부모와 자녀가 얼굴을 마주 대할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일에 지쳐 돌아온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은 “숙제 했니?” “시험 잘 봤니?” 정도. 대화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다가 자녀가 사춘기가 되면 부모 앞에서 입을 다물어 버려 “저 아이가 내 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어지기도 한다. 언로는 막히고 대화를 시도하려 하면 이미 때가 늦은 경우들이 생긴다.
몸의 건강을 기와 혈의 흐름으로 알 수 있다면 가정의 건강은 가족 간 말과 마음의 흐름으로 알 수 있다. 흐름이 원활하려면 말이 자주 많이 오가야 하는 데 ‘말’도 습관이다. 평소 대화가 없던 가족이 어느날 갑자기 말을 하기로 한다고 대화가 되지는 않는다. 자녀가 어릴 때부터 같이 대화하는 습관을 기르고 가족들이 같이 어울리는 것을 습관화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시는 내년부터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전국 300개 도시를 물리치고 블룸버그 자선기관으로부터 500만달러를 수상해 실시하는 가족 간 대화 훈련 프로그램이다. 어린 아기를 키우는 저소득층 가정을 대상으로 아기에게 가능한 한 말을 많이 하고 책을 읽어주도록 훈련하는 실험이다.
실험은 1995년 발표된 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부모가 부유한 전문직이냐 저소득층이냐에 따라 아기가 태어나서 듣는 말의 양이 다르다는 연구 결과이다. 전문직 부모의 아기는 시간당 평균 2,100개 단어를 듣는 반면 웰페어 수령자의 아기는 600 단어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3살이 되면 저소득층 아기는 부유층 아기에 비해 3,000만개의 단어를 덜 듣게 되는데, 생후 3년간 들은 어휘가 많을수록 아이의 IQ와 학업성적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이다.
저소득층 부모들이 왜 아기에게 말을 별로 안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삶에 지쳐서 일수도 있고 자녀양육에 대한 정보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프로비던스 시는 저소득층 부모들에게 아기와 대화하는 습관을 길러줌으로써 소득격차에 따른 학력 차이를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가족 간 대화 습관을 지속하는 데 좋은 방법으로 꼽히는 것이 저녁식사이다. 부모와 자녀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습관이 되면 그 가족은 ‘통즉불통’이다. 얼굴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으니 가족 간 관계가 틀어지거나 아이들이 비뚤어질 일이 적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가족과 주 5~7회 저녁식사를 같이 하는 아이들은 마리화나(12%)나 담배(14%)에 손댈 확률이 훨씬 낮다. 저녁식사 기회가 드문(주 2회 미만) 아이들은 35%가 마리화나와 담배를 피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가정의 비결은 가족이 많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다. 그래서 잘 통하는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다. 5월은 가정의 달, 스마트폰 내려놓고 가족들과 눈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달로 삼아보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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