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푸르구나 어린이 세상 이란, 어린이들의 함성이, 하늘 바다의 파도결을 타고, 내가 서 있는 이 이국(異國) 땅까지 들려온다. 그런데 그 소리에 겹쳐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할아버지 왜 우리들을 두고 이민 가셨어요? 우리들에게 어린이 극장을 세워 주시기로 약속 했잖아요?” 라는 소리다. 그 소리가 내 가슴을 송곳 같이 아프게 찌른다. 그래서 이 울보 할아버지는, 그들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나와 버린 죄스러움 때문에, 올해도 초점 잃은 눈길로, 5월 하늘을 쳐다보며, 눈시울을 적신다.
그런데 이 5월에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또 다른 사연이 있다면,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5월에, 시인 서정주 선생 주도로 열린 ‘범세계 문인대회’에 참석키 위해, 내가 이민 온지 8년 만에 한국에 나갔을 때, 내 숙소로 찾아 온, 옛 아동극 동지들이 나에게 던진 말! “우리들은 어찌 하라고 가버렸습니까?”였다. 그리고는 그들이 나에게 간청한 말이 “되돌아 와서 옛날처럼 뜁시다!”였다. 그렇다! 나의 미국으로의 이민은 어찌 보면, 아동극이란 특수 분야의 전투에서, 부하 장병을 패잔병 같이 팽개치고, 혼자 살아남기 위해 도망친 비겁한 지휘관의 탈출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 동지들의 바람대로,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내에 한국으로의 원대복귀(귀국)를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런데 그들과 또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지름길이 곧, 내가 이민 오기 전에 문화공보부를 움직여, 국회에 제출한, ‘국립아동극장 건립’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예결위에서 무참하게도 부결됨으로써, 나를 이민길로 내몰았던 바로 그 일의 재(再) 추진이라고 믿고 있을 때, 마침 내 친구인 김영삼이 노태우 대통령에 이어, 청와대에 입성(入城) 함으로써, 그 길이 쉽게 트일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국립아동극장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편지와 함께, 그와 나의 우정의 사연들이 새겨진 내 수필집을, 그가 야당시절에 경제적으로 많이 도왔던, 우리의 또 다른 친구인, 송두호 의원을 통하여 그에게 전달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중 본국 KBS 초청으로 내가 창단한 미주 아동극단 ‘민들레’의 한국공연 때 우리 단원의 청와대로의 초청의 기회가, 내가 직접 영삼을 만나, 국립아동극장 건립을 요청할 수 있는 찬스라고 생각했다.
8월12일, 리틀엔젤스 예술극장에서의 ‘콩쥐 팥쥐’ 공연을 마친 다음날, 우리단원 90여명(어린이,교사,학부모)이 2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하여 청와대로의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시간 5분을 남겨 둔 시점에서 날라 온 전갈이 방공훈련인 ‘을지훈련’ 때문에, 우리들의 청와대 초청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자 버스에 타고 있던 방공훈련이 뭔지를 알 까닭이 없는 어린이 단원들 입에서 한결같이 터져 나온 말이 “대통령 할아버지 나빠!”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비상훈련이 끝난 다음 시간이나 아니면 그 다음날로 김 대통령이 어린이들과의 약속은 물론 이국만리 태평양을 건너 우리교포 2세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온 친구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나 헤어진 지 반세기를 뛰어 넘은 세월의 이쪽에서 주름살 진 옛 친구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도 그들 관료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대로 영삼이 그가 직접 챙겨서라도 우리를 다시 청와대로 부를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의 바람을 외면하고 말았었다.
영삼! 그가 평소에 즐겨 쓰는 말대로 “지(그)와 내가 어디 넘(남)이가?” 그와 나는 통영중학 4학년까지(그가 경남중학으로 전학 가기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한 급우였던 사실 말고도, 거제도 섬학교인 장목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이나 같이 공부 한 동창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섬마을에서 그와 나 단 둘만이 통영중학교에 진학한 남다른 관계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특히 일제시대 때, 조선인 동급생 중에서 그와 나, 그리고 종균(작고)이 셋을 ‘꼬맹이 삼총사’라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영삼이 그가 이런 친구인 나와의 만남의 기회마저 주지 않음으로 해서 그는 어린이들에게는 나쁜 할아버지로 비쳐졌고 친구인 나와의 우정마저 저버림으로써 나를 하여금 어린이들에게나 옛 아동극 동지들과의 약속 마저 지키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만일에 친구인 내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린이들에게서 두고두고 박수 받는 공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남았을 텐데, 끝내는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의리 없는 대통령!’ 이라고 부르게된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 중학 동기생 40명 중 5명만이 살아남아 있는 친구 중 한 사람이기에 섭섭한 마음을 지우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오면 돌아가리라고 다짐했던 그 봄(어린이극장 건립)이 끝내 오지 않아 나의 본국으로의 되돌아옴을 보지 못하고 나를 앞서간 옛 동지들을 위해 내 남은 생애를 아동극전선(戰線)을 지키는 데 그들 몫까지 뛸 것이다. 또한 어린이들과의 약속을 못 지킨 나는 생전이나 내가 이 세상에 없는 훗날에도 그들의 학예회 연극공연에서 이 할아버지의 극본(작품) ‘숲 속의 대장간’에서 대장간 꼬마와 토끼를 쫓는 사냥꾼으로 만날 것이며 ‘섬마을의 전설’에서는 섬마을 아이 재덕이와 낚시 할아버지로,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름뱅이 베짱이로, ‘역마을 소년’에서는 불쌍한 사내 아이 동욱이와 그의 아버지 상이용사로 만날 것이다. 그리고 ‘토끼전’에서는 용궁나라 거북대감과 땅나라 엄마토끼로 만날 것이다. 그래서 이 울보 할아버지는 또 다른 5월이 와도 다시는 울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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