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고 모든 의사들은 누누히 말한다. 매일처럼 걷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보통 때는 잘 깨닫지 못한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대략 만 한살 정도가 되면 걷기 시작하는데 첫발걸음을 떼어 놓을 때 부모들은 기뻐하고 손뼉을 치면서 좋아한다.
이렇게 시작해서 우리들은 일생을 거쳐 걸으면서 산다. 공기나 물처럼 보통 때는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 갑자기 다리를 못쓰게 될때 ‘아차!’하면서 사람들은 새삼 그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실 걷지 못하면 그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다.
비교적 일생을 건강하게 살았던 나는 얼마 전 발목을 삐어 며칠동안 꼼짝을 못하면서 그때 깨달았다. 걷지 못하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를… 다행히 다음날 한의사에게 가서 침을 맞고 한 2주일 정도 조심했더니 이제는 거의 다 나았다. 단 몇 주일이었지만 그동안 불편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때 난 많이 깨달았다.
다리를 다치면 걸을 수도 없고 운동도 할 수 없다. 일생을 테니스도 치고 줄넘기도 하고 늘 걸었던 나에게 걷지 못한다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날 침을 맞으면서 한의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어릴 때 널을 뛰다가 발목을 다쳐 침을 맞은 것 이외에 지금 수십년 만에 침을 맞는 것이라고 했더니 놀라면서 내 나이에 그토록 침도 맞지않고 건강하게 살았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사실 내가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우리 부모님이 아들인 줄 알고 그 당시 집 한채 값이던 녹용같은 보약을 많이 먹여서 나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정작 아들인 오빠는 딸인줄 알고 아무 약도 쓰지 않아 비실비실하게 태어났다고 엄마는 늘 말씀 하셨다.
그 때문인지 나는 비교적 감기 몸살 한번 잘 걸리지 않고, 병원에도 잘 가지 않고 남들보다 훨씬 건강하게 산 것은 확실하다. 이제 나이가 먹어서 한두가지 지병은 갖고 있지만 관리를 잘해서 늘 정상치를 유지하고 있다. 내 담당 의사는 나를 볼 때마다 “유아 어메징!”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런 이유가 늘 걷고 아침 운동을 거르지 않고 하는 덕분이다. 내 주변엔 의외로 무릎이나 허리로 고생을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들을 보면 마음껏 걷지도 못하고 여러가지 운동에도 제재를 받는 것이 안타깝다. 한참 젊었던 시절 나는 재미로 테니스를 쳤지 건강을 위해 하지는 않았다. 밖의 날씨가 90도를 넘어도 친구들이 부르면 뛰어 나갔다. 우리들은 작열하는 캘리포니아의 태양 밑에서 얼굴이 검둥이가 될 정도로 뛰면서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덕분인지 내 신체 중에 가장 강한 부위가 바로 다리라고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딸이나 며느리들, 또 젊은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다리 건강에 대해 강조한다.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을 때 건강을 저금하라고.
그들은 아직 젊어서 그 중요성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영원히 젊을 것이란 착각 속에 산다. 그런데 어느날 늙음은 훌쩍 찾아와서 씨니어가 되고 맥도날드에 가서 커피를 사먹을 때도 씨니어 커피로 디스카운트를 받게 된다. 일불도 안되는 돈을 내는 것은 좋지만 속으론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나!하고 새삼 서글퍼진다.
내가 발목을 다친 후 새삼 깨달은 것이 있다. 그동안 나는 너무 건강해서 남의 아픈 곳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살았다. 남편이 다리를 다쳐 응급실 신세를 졌어도 그가 그렇게 고통 속에 산 것을 잘 알지 못하고 별로 살뜰하게 챙겨주지도 못했다. 늘 골골하게 산 남편은 늘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무심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인간은 이렇게 이기적이다. 과부가 과부 사정 안다고 자신이 당해봐야 깨닫게 된다. 이번에 하나님은 내게 작은 고난을 통해 남을 좀더 배려해야 하는 것을 배우게 하신 셈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손실은 없다. 잃은게 있으면 늘 얻는게 있는 법이다. 그래서 삶이란 늘 윈윈이다.
며칠전 네살짜리 손녀가 기계체조를 배운다고 해서 딸과 함께 가본 적이 있다. 아직 두살배기도 채 안된 아기서부터 대여섯살 짜리들이 조그만 팔과 다리로 앙징맞게 코치를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저애들도 우선 건강하니까 이런 곳을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두살배기 손주도 자기도 하겠다고 떼를 써서 다음 주부터는 그애도 시키기로 했다.
레슨이 끝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손녀딸을 이렇게 말했다. “아이 켄낱 웨잇트 넥스윜"
아이들이 자라 무슨 올림픽 선수가 돼라고 부모들은 그렇게 크게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코치를 따라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등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서 사는 법을 어린 시절부터 배우게 하고 그 시간이 즐겁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나는 아침마다 걸으면서 이렇게 기도한다. 죽을 때까지 내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밥해 먹고 누구든 자식들까지에게도 짐이 되지 않게 살게 해달라고, 정말 구구팔팔 이삼사는 바라지 않더라도 건강하게 살다가 건강하게 죽을 수 있다면… 아마 이 소원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씨니어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걷는다. 살기 위해 걷고 또 잘 죽기 위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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