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추 선수가 나무젓가락으로 공중에 나는 콩을 문제없이 치더군요.”
지난 5일 신시내티 레즈와 워싱턴 내셔널스 경기 생방송 중 내가 한 말이었다. 레즈 선수들 정보를 완벽하게 꿰고 있던 두 아나운서는 처음 듣는 이 희한한 정보를 아주 재미있어 했다. 야구와는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아나운서들과 함께 중계석에 앉아 머쓱하던 난, 나도 뭔가 중계에 한몫 한 것 같아서 우쭐해졌다.
‘북 켄터키 대학의 날’로 이름 지어진 그 경기는, 우리 대학 교수, 직원, 학생들이 대거 참석하고 총장의 시구로 시작됐다. 2회부터 레즈가 홈런 두 개를 내어 관중의 열기가 한창 고조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방송실에 있던 3회에 또 홈런이 터졌다. 관중들의 고함이 대단했다.
3회가 끝나 중계석에서 나오니 뒤에 서서 보던 구단주 밥 캐스테리니가 중계 중 한국어를 한 마디라도 했냐고 물었다. 못 했다고 하니, 그는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레즈가 내셔널즈를 이기는 중, 오하이오 팍스 방송국 중계’쪽지를 전하며 한국어로 말하라고 했다. 한국어 문장을 마치자, 아나운서들과 구단주가 요술을 본 듯 신기해하며 나를 포옹해주었다.
TV 중계실을 나온 우리는 직원의 안내로 구장을 구경했다. 남편, 나, 그리고 자신의 시구보다는 내 손님으로 동참한 총장(참 미안했었다)과 그의 아들은, 광고판, TV 카메라 관리실을 구경하며 그 규모에 입을 벌렸다. 라디오 중계실로 들어설 땐, 추 선수가 홈런을 쳤다! 우리는 모두 입을 꼭 막고 펄쩍펄쩍 뛰었다.
5회쯤 다시 좌석으로 돌아오는데 ‘추우우우’를 외치는 관중들의 열광이 대단했다. 나는 뒷좌석에서 커다란 태극기들 들고 힘차게 추 선수를 응원하는 한국 교환학생들과 함께 목이 쉬고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응원에 임했다. 그날 경기는 레즈가 15 대 0의 승리를 기록했다. 내셔널즈로선 최악의 경기였다.
한 달 전 우리 대학이 레즈 구단주에게 최고기업가 상을 수여했다. 당시 남편이 그에게 선수들의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그는 제안을 받아들인 후 추 선수에 대해 말을 시작했다. 레즈 입단 소식을 듣자마자 추 선수에 대해 열심히 알아봤던 나는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내가 입 뗄 자리가 아니어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구단주는 추 선수가 신시내티에 처음 왔을 때 한국에서 온 십여 명의 카메라맨들이 그를 따라 다니더라며, 수많은 유명선수들을 봤어도 그런 광경은 처음이라 했다. 모든 레즈 경기의 한국중계방송도 체결되었다며, 추선수가 한국에서 정말 인기가 높은가 보다 했다.
침묵에서 해방된 나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추선수의 팬이라고 침 튀기며 자랑했다. 내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그가 내 연락처를 물었다. 그리곤 한국가족들한테 중계방송에서 보자고 말하라는 게 아닌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던 차, 레즈에서 연락이 왔다. 생중계 방송 인터뷰를 하고 경기 전에 추 선수와 15분간 만날 것이라고도 했다. 세상에! 내 스케줄(?)은 주차 때부터 레즈 직원 몇 명의 안내 속에 진행되었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내 이름이 적힌 폴더를 들고 있어서 물으니 폴더에 담긴 내 사진, 신상명세서, 이력서 등을 보여주었다. 40여 개국으로 나가는 방송이니 게스트 조사가 철저해야 할 거라는 남편의 분석이었다.
추 선수는 이곳 한국주민과 처음 만남이라며 나와 남편을 반갑게 맞았다. 자신 있어 보이지만 겸손하고, 활기 찬 모습이었다. 신시내티가 클리블랜드보다 훨씬 편안하다며 환영받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다시 연습에 들어간 그의 모습을, 한국 카메라맨이 초대형 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열심히 담았다. 정말 자신만 따라다니는 카메라맨이 있는 선수는 그 뿐이었다.
레즈와 1년 계약 중인 그는 단 아홉 경기를 통해 이미 구단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구단 직원들은 그가 실력은 물론 성실함으로 모든 선수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겸손함으로 높고 낮은 모든 직원들로부터 사랑 받는다 했다. 현재 737만 여 달러인 그의 몸값이 내년에 많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우리 모두는 레즈가 그걸 감당해낼 수 있기만 빈다. 단지 한인이라는 이유로 하룻밤의 호사를 맛 본 나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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