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채는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 때인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살게된 아이 이름이다. 얼굴이 동그스럼하고 부리부리한 눈과 짧은 목을 가져 결코 이쁘다고는 할 수 없고 억지로 말하자면 좀 복스럽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애 아버지와 남동생까지 갑자기 세식구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된 인연은 이렇다.
육이오 전쟁 이후 이북에서 피난을 내려와 어찌어찌해서 우리 동네까지 오게 되었고 우리 농장 근처에서 한동안 굴을 파서 살다가 우리 엄마 눈에 띄어서 그들을 불쌍하게 생각한 엄마덕에 그애 아버지는 농장의 머슴으로, 경채는 식모애로, 동생 아이는 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아이로 살게된 것이다.
경채는 나보다 두어살 위였는데 우리 식구들의 밥 당번에다 어느땐 머슴들의 새참까지 지어서 여름철이면 뙤약볕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밭이나 논에까지 먹을거리들을 나르느라 그 짧은 목이 더 짧게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애를 생각하면 언제나 얼굴이 벌개서 농장 안을 바쁘게 휘젓고 다니던 일이 어제처럼 느껴진다.
그애 식구들이 얼마나 우리 식구들과 함께 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대학생 때 그애가 시집을 갔으니까 적어도 몇년은 우리와 함께 산 것 같다. 그애가 시집을 가기 전에 먼저 홀아비로 살았던 그애 아버지를 어느 과부와 짝을 지어줘 나중엔 갓난 아기까지 태어 났으니까 우리 엄마는 그애 식구들에게 하느라고 하신 것 같다.
갑자기 그애를 부랴부랴 부천 어디서 장사하는 사람에게 시집을 보낸 이유는 좀 유별났다. 그애가 어느 머슴과 눈이 맞았다는 것이다. 마침 그 머슴의 젊은 아내는 막 몸을 푼 후였다.
그 당시 경채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하고 청승 맞게 잘 하지도 못하는 유행가를 기를 쓰며 부르기도 해서 그때 막 과부가 된 우리 큰 언니에게 미움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건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큰 언니가 살짝 그 방을 열어 보니까 경채와 그 머슴이 한덩어리가 되어 엉켜 있어서 기절을 한 언니가 엄마를 잠에서 깨웠고 집안은 곧 난리가 났다고 한다. 물론 나는 서울서 대학교를 다니던 때니까 모든 이야기는 나중에 들은 것이다.
"지가 들키지 않고 무사히 살 팔자면 잘 살꺼고 그렇지 않으면 소박댕이가 되서 오든가 둘 중에 하나겠지 뭐" 엄마는 그애를 시집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 큰 언니는 일만 더 크게 만든다고 극구 말렸지만 엄마의 말씀대로 그애는 무사히 신혼을 보내고 나중에 아주 잘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경채의 아버지가 힘이 장사인 머슴이어서 우리 엄마는 그애가 시집을 갈때까지 그 일을 비밀에 부쳤었다. 무식한 그애 아버지기 알게 되면 그애는 뼈도 못추린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쉬쉬 하면서 시집을 갔지만 우리 집에서 사는 머슴들이나 아낙네들에게 이미 소문이 퍼져서 결국 그때 막 몸을 푼 새댁까지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머슴과 그 새댁도 별탈 없이 잘 넘어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머슴댁이 살결이 하얗고 얼굴색이 검은 편인 경채보다 훨씬 인물이 나아서 나중에 그 얘기를 들은 나도 왠일인가 하고 어리둥절 해졌다.
그때 나는 ‘남녀사이는 겉으로 드러난 인물보다 뭔가 알수 없는 알쏭달쏭한 것이 있나보다’ 하고 어렴풋이 짐작을 했다. 수십년 뒤 내가 한국에 귀국했을 때 오빠는 내게 이런 말을 전해 주었다. 경채 동생이 아주 부자가 되어 우리 오빠를 찾는다고 했다. 경욱이라는 그 남자애는 우리집에 있던 트럭의 조수로 따라 다니면서 운전을 배우게 됐고 나중에 운수업에 손을 대 부자가 된 것이라고 했다.
담담히 그말을 전하는 오빠 얼굴이 약간 슬퍼 보인다고 생각했다. 부잣집에 외아들로 태어나 생전 직업다운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그 많던 우리집 재산을 홀랑 다 들어먹고 마지막에는 선산까지 팔아먹은 오빠가 자기 집에서 부리던 아이가 부자가 되어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들었을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
아마 살아 생전 아들만 생각하다가 저 세상으로 한많은 생을 살고 가신 우리 엄마를 생각하고 애통했을까. 아마 그 경욱이라는 조그맣던 애는 우리 오빠를 만나면 한번 제대로 뽐내고 싶었을까. ‘나좀 봐라! 내가 한때는 너희 집에서 애기 머슴으로 살았지만 이제 나는 너보다 한수 위에 서있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버지는 머슴으로, 누나는 식모로, 나는 심부름꾼에서 트럭 조수로 따라다녔지만 이제 나를 아무도 깔보지 못한다’라고 기염을 토할까.
아무튼 세상은 돌고돈다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래야 이 세상은 더 흥미롭고 공평할 것 같다. 지금 어디서 경채가 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마 이제 그애는 옛날의 촌스럽던 때를 벗고 중후한 노인으로 변해 있을까. 어디서 서로 만난다 해도 우리는 결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다만 옛날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그 정을 그애가 가끔 기억했으면 한다. 비록 목은 짧고 얼굴은 검었지만 웃을 땐 볼우물이 지던 그 경채라는 아이를 살아 생전 꼭 한번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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