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리 회계법인 김성철 대표 파트너
▶ 60년대 유학와 회계학 공부 한때 직원 40여명 거느린 한인 커뮤니티‘원조’CPA 나이 들수록 젊은이에 기회를 내 의견은 10개 중 2개쯤만$
사업이든 스포츠든 일단 마음만 먹으면‘롱런’이다. 70대에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무슨 할 말이 있느냐’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공인회계사 김성철(72)씨를 아는 사람은 그가 마라톤을 완주했다면 의아해 한다. 그저 숫자에 파묻혀 일만 하는 영락없는 선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말을 할 때도 큰 소리 한 번 내는 법이 없고, 웃을 때도 소리 없이 미소만 짓는다. 그런 그가 3년째 LA 마라톤에 참가해 모두 완주했다. 1972년 한인사회가 막 타운을 형성하던 시절에 CPA 사무실을 오픈해 한 때 40여명의 CPA들이 근무하는 한인 최대의 회계법인으로 명성을 날렸던‘김&리 회계법인’의 김성철 대표 파트너를 만나 그의 삶과 열정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선 올해 마라톤 기록부터 말씀해주시지요
▲기록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5시간40분에 완주했어요. 첫 출전에서는 6시간30분 걸렸는데 올해는 몸도 좀 단련되었고 러닝클럽의 도움을 받아 힘 조절도 좀 해보고 그랬죠.
-오랫동안 마라톤을 한 사람도 그만 둘 70세에 시작하셨는데
▲좀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마라톤을 200회 넘게 뛴 50대 후반의 지인이 있었는데 2011년에 LA 마라톤 등록을 대신 해놓았으니 출전하라는 거예요. 평소에 테니스로 체력단련을 했지만 망설이다가 ‘중간에 포기한다는 생각으로 내 평생 기록 한 번 세우자’며 뛰었지요. 그 해 따라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빗방울을 닦아내며 뛰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비가 오히려(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됐다고 말하더군요.
-특별히 체력을 유지해 온 비결이 있나요
▲우리 같은 직업은 체력도 있어야 하고 정신도 건강해야 하죠. ‘밸런스 유지’를 중시해야 일도 오래하고 대인관계도 유지할 수 있어요. 내 경우는 테니스와 스키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어왔어요. 몸은 피곤해도 운동으로 땀을 빼고 나면 정신이 맑아지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잖아요. 무엇보다 마라톤도 스키도 함께 하는 ‘패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돼요. 테니스 클럽도, 마라톤 동호회도, 고려대 교우회도 그렇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항상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해서 모임이 잘 지속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죠. 운동을 하면 인간성도 좋아집니다.
-한인 CPA의 원조이시죠
▲유학을 와서 회계학 시험을 보고 1969년 10대 회계법인으로 꼽히는 회사에 취직을 했지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인종비율을 맞추기 위한 고용이었죠.(웃음) 거기서 한 4년 있으면서 눈을 뜬 거죠. 한인사회가 형성되던 무렵이라 시니어 CPA와 함께 사무실을 오픈했어요. 초기에 미국 로펌 일을 했는데 배우 도리스 데이의 이혼관련 업무를 맡게 됐죠. 양쪽 변호사가 30명씩 되는 희대의 사건이었는데 남편 쪽 로펌의 회계업무로 사무실을 유지했어요. 그렇게 40년이 흘러갔네요. CPA 생활을 하면 무엇이든 철저해야 합니다. CPA의 판단 실수가 업체의 타격으로 연결되거든요. 물론 내가 만든 실수도 있고 아래 직원들이 한 실수를 캐치하지 못해 발생한 실수도 있어요. 과거에는 우리의 성의를 좋게 봐주어 해결이 많이 됐는데 앞으로는 힘듭니다. 미국도 한인사회도 전체가 법적 클레임으로 가는 분위기죠. 인간관계로 해결하려는 시기는 지나갔기 때문에 ‘퀄리티 컨트롤’이 점점 중요해져요.
-CPA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나는 사건이나 보람을 느꼈던 적은
▲1970년대 한국 기업들이 미국 진출을 시작하면서 지상사 회계업무를 맡았고, 한인업소들도 미국 은행과 거래를 하는 단계에서 재정보고서(financial statement)에 신빙성이 필요해 ‘김 & 리’를 찾아왔죠. 지금은 없어졌지만 봉제업계에서 전설로 남아 있는 ‘자이언 인더스트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창업자가 돌아가셨는데, 돌이켜보면 당시 각 분야에서 뛰어난 창업자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김 앤 리’도 동반 성장할 수 있었다고 봐요.
-한인사회 최초로 파트너 회계법인을 운영했는데 어려웠던 점은
▲많은 직원들이 나가서 자기 개업을 했습니다. 고객을 데리고 나가 회사를 차린 경우도 있고. 실력이 있어서 따라 나가는 고객들이 있기도 해요. 다행스러운 것은 독립한 후에도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의리를 지키는 경우가 다반사라 여전히 우리의 ‘리소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단독으로 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힘을 합해 처리하기도 해요. 내가 끌고 나가려는 ‘회사 컬처’가 그렇습니다. 자신이 없으면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하고 일단 쓰면 믿어야 하는 거죠.
-비즈니스를 하는 한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은 한계에 와서 무한경쟁으로 몰고 가죠. 그런데 이 경쟁에서 밀리면 죽어요. 무한경쟁이란 미국인들이 말하는 ‘Bigger, Bigger! More, More! Better, Better!’를 무한대로 추구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인 업체들도 변화하는 테크놀러지를 흡수하면서 끊임없이 개혁해야 해요. 회계원칙만 봐도 늘 바뀝니다. 경제 구조가 바뀌고 다변화되니 회계원칙도 바뀌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CPA들이 회계감사보다는 세금보고만 하려고 해요. 세법 관련은 재판이 많아 모든 법정 케이스를 숙지해야 하지만 세금보고는 그에 비해 복잡하지 않죠.
-인생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는
▲특별한 비법이 있겠어요.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벽이 걸린 액자를 가리키며). 저걸 붙여놓고 있는데 정원훈 행장님이 쓰신 서예작품이에요. 한문으로 ‘지극할 지, 이치라고 하는 이, 없을 무, 말씀 언’ 즉 ‘지리무언’입니다. 지가 크다는 이야기라 제가 볼 때는 ‘큰 이치는 말이 필요 없다’는 뜻인 것 같아요.
-한인사회가 많이 성장했는데 그 기초를 놓은 1세들의 앞으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이제 리더십이 젊은 사람들에게 넘어가는 단계에 있어요. 가능하면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내가 하고 그래야죠. 의사결정에 있어서 고집하면 안돼요. 회사를 나가지 않고 여기에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도록 하게 하려면 내 것만 주장하면 안 됩니다. 내 의견은 10개 중 2개쯤 주장하면 된다고 봐요.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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