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막내가 거실에서 제 에미 전용의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고 있다. 그러다가 다급한 목소리로 “아버지, 아버지 빨리 여기 와 봐요!” 라고 나를 부른다. 뭔가 제 애비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찾아 냈구나 하는 생각으로, 컴퓨터 쪽으로 다가 가 보았다. 그러자 컴퓨터 모니터에 뚜렸이 떠 있는 빨간색 커버의 책 한 권! 자세히 드려다 보니, 책 제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따른 동극집’이다.
그런데 내 눈에 낯선 이 책이, 놀랍게도 나의 단골 출판사인 교학사인데다, 저자가 내 이름 주평 지음으로 되어 있다. 나는 글쓰는 방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는 책꽃이에서 허급지급 내 자서전을 꺼내어, 내 저서연보를 훑어 보았다.그런데 1961년이 발간년도로 되어 있는, 이 책의 이름이 기록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펴낸 내 책을 내가 모른채, 52년을 살아 왔다는 말이다. 혈육관계로 비추어 본다면, 나는 반세기 전에 내가 나은(출산)자식의 존재 조차 까마득 하게 잊은 채 살아 온, 비정한 애비인 셈이다.
그리고 보면 이 책은 내가 지금 까지 펴낸 35권의 책 가운데, 네 번째로 오래 된 책이자, 1958년에 내가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아동극집인 ‘파랑새의 죽음’에 이어 59년에 펴낸 2번째 동극집 ‘숲 속의 꽃신’ 이후, 연이어 발간 한 23권의 아동극집 가운데, 세 번째 동극집인 셈이다. 나는 잃어 버렸던 자식을 찾아 내어, 내 호적에 올리 듯이, 이 책을 곧 바로 내 저서연보에다 등재 하고는, 서울의 교학사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이 책을 팔고 있는 ‘호산방서점’과 또 다른 서점 ‘에시디언’이란 곳에다, 이 책의 판매권을 넘겼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되돌아 온 대답이 전여 그런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헌책이 엿장수나 고물상에게 정울 무게로 팔려 가던 옛 생각과, 팔다 남은 책이, 청계천 헌책방으로 헐값으로 팔려 가던 일이 머리에 떠오르자, 어쩐지 서글픈 생각 이상의 슬픈 느낌 마져 들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 눈길이 책값 쪽에 머물자, 놀랍게도 새책인 경우에도, 218쪽(페이지) 부피의 책 이라면,환화로 8천원 내지는 1만원이 적정가격인데, 큰 사전 값과 맞먹는 8만원에 팔고 있었다. 나는 한국의 서점에다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그리고는 내가 그 책의 저자인 사실을 숨긴채, 발간 된지가 52년이나 된 헌책을 왜 그렇게 빗싼 값으로 팔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드니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래된 책이자, 또한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책인데, 무엇이 비싸냐”고 오히려 되묻는 책방 주인의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지난 60년 동안, 남이 가지 않는 가시밭 외길을 걸어 온게, 결코 잘못 된 걸음이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책도 엿장수 지게나 고물상 리어카에 실려 간, 천덕꾸러기 신세의 책이 아니 었구나 하는, 자위까지 갖게 하였다.
한편 내가 펴낸지도 모르는 이책을 찾아 내어 팔고 있는 자기는, 휘귀(값진)책 수집자라고,이 책의 입수 경위까지 설명 해 주었다. 그래서 내가 책방 주인에게 저작권을 주장하기에 앞서, 고마움 마져 느낌은, 내 혈육 같은 책을 귀하게 여기고 또 찾아 내어 준데 대한 감사한 마음에서 인지도 모른다.
나는 광주에 있는 내 동극상 제1회 수상자인 동화작가이자, 아동극작가인 이현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을 사서 보내 달라고 부탁 했다. 얼마 후 책이 부쳐 왔다. 내가 낯설은 이 책을 손에 들자, 나도 모르게 내 눈이 이슬로 흐려져 갔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이민길에 오르면서, 다른 책들은 이민 보따리속에 고이 싸 들고 왔는데, 이 책 만을 한국에 두고 온데 대한 죄스름에서 이 책을 가슴에 꼭 껴안고는, 마음 속으로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라고 내 마음의 독백을 뇌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내 책상 위에, 52년 만에 찾은 이 책을 올려 놓고는, 잃어 버렸던 양 한 마리를 되 찾은 양치기의 기쁨 같이, 만져 보고, 또 쓰다듬어 보고 있는 것이다.
금년 따라 나에게는 4월의 햇살이 유난히도 따사하게 느껴지는 오후, 우리 가족이 이민 오기 전 해인 1975년, 애비가 주관 하던 한국아동극협회 출판부에서 발간 한, ‘주평아동극선집’(889쪽)과 이민 오던 해인 1976년에, 이 애비의 친구인 오아시스레코드사의 손진섭 사장이, 이민 떠나는 친구를 위해, 많은 제작비를 드려, 애비의 아동극 작품 18편으로 ‘노래가 있는 아동극’ 이란 음반을 취입 한, 우리 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L.P판 8장과 카셑 8장, 그리고 이 음반에 수록 된 내용의 동극집 8권등,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애비의 책을, 원작자인 애비의 승인 없이 팔고 있는 사실을 컴퓨터 검색으로 찾아 내어, 이 애비를 놀라게 한 막내가, 오늘도 제 에미 컴퓨터와 마주하여, 제 애비에 관한 또 다른 사실의 보물찾기 라도 하듯, 컴퓨터 마우스를 열심히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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